“언니-동생 하다 친한 친구됐죠”… 女-女 연상연하 우정 과시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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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라지요? 겨우 한 살 차이라는 이유로 연하 애인과 헤어졌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은근히 화도 나고 부럽기도 하시다고요? 여기 부러운 커플(?)들이 또 있습니다. 나이 차를 극복하고 진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연상연하 여자 친구들 말입니다. 연상 ‘친구’는 말합니다. 품 안 들이고 젊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연하 ‘친구’는 말합니다. 공짜로 인생 경험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네요. ‘언제나 이름 옆에 붙어 다니는 괄호 안의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랍니다.’》

“얼마 전 몸에 딱 붙는 가을 재킷을 하나 샀어요. 내 나이에 이런 옷을 어떻게 입을까 싶어 망설였는데 함께 쇼핑에 나선 아홉 살 아래 친구가 용기를 주어 구입하게 됐어요.”

몇 년 전 동네 운동모임에서 만난 연하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박희숙(51·서울 송파구 오금동) 씨. 그는 “요즘 젊은 친구 덕분에 패션감각이 5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박 씨는 “갱년기가 오면서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날이 많았는데 젊은 친구와 자주 만나 최신 정보도 듣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인생의 활기를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선후배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친구관계 하면 으레 또래만을 생각해 왔던 것이 일반적.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요즘 중년 주부들 사이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동성 친구를 사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부들이 친구의 범주를 확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주부들의 대외적인 활동이나 모임이 많아졌다는 점.

5년 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여덟 살 위 언니와 친구로 지낸다는 이정민(36·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씨는 “나이 차는 큰언니뻘이지만 취향도 비슷하고 만나면 마음이 편해 친구 이상으로 지내게 되었다”면서 “주위에 평생교육원이나 취미 모임에서 만난 주부들끼리 늦깎이 우정을 과시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전했다.

연상연하 친구들은 나이 차에서 오는 세대 차이가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웃 동네에 살던 주부와 10여 년째 언니 동생하며 편안한 사이로 지낸다는 윤모(41·서울 강남구 삼성동) 씨는 “동년배 친구에게는 속 시원히 털어 놓지 못하는 고민거리도 언니한테 이야기하면 많은 위로가 된다”면서 “인생 선배로서 실제 삶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해주니 더 피부에 와 닿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영란 연구위원은 “자녀 양육 등 가족에 대한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친구를 다시 찾게 되는 중년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주부들을 위한 문화·취미 공간이 많아졌다는 점 등이 맞물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를 초월한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현대인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사람 간의 관계는 더 소원해지게 되는데 과거에는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대가족 내의 가족이 해 주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 같은 역할을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나 ‘직장동료’가 대신해 주게 되었다는 것.

성균관대 응용심리연구소 김미라 교수는 “나이 차가 있는 친구는 또래 친구에 비해 경쟁심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어 강한 친밀감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편안한 사이로 치자면 모녀 사이만큼 가까운 사이도 없지만 엄마와는 공통의 화제가 적고 엄마는 무조건 베푸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친구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며 “엄마같이 편안하면서 대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언니뻘 친구는 분명 매력적인 삶의 조언자”라고 덧붙였다.

‘언니’ 친구들은 ‘동생’ 친구들에게 젊은 감각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박상희(44·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씨는 “항상 도전하며 적극적인 동생 친구의 생활방식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져 그를 만나면 나도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하 친구를 만나는 것이 내적인 성숙에도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주부도 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나이로 미리 선을 긋지 않는다는 김경애(47·서울 종로구 내수동) 씨는 “또래 친구한테는 곧잘 부리는 성질도 나이 어린 친구한테는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내하게 되더라”며 “연하 친구를 통해 성숙하게 늙어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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