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오늘 나의 날 아닌듯 타인의 향연을 축하”

  •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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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 듯합니다. 타인의 향연을 축하합니다. 지금 한반도는 이겨내야 할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2일 아침 고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13일 오후 8시, 고은 시인은 경기 안성시 자택에 없었다. 대신 자택 대문 옆 담장 위에는 컴퓨터로 작성해 A4용지에 프린트한 짧은 메모가 놓여 있었다.

고은 시인의 부인 이상화(영문과) 중앙대 교수가 “선생님이 아침에 메모를 주며 ‘프린트해 취재진에게 전해 주라’고 했다”며 오후 5시경 대문 밖으로 갖고 나왔다.

낮부터 집 앞에 모이기 시작한 80여 명의 취재진은 고은 시인의 메모를 읽은 후에도 ‘혹시나’ 하며 발표가 나는 순간까지 집 앞을 계속 지켰다.

노벨상 수상 축하 잔치까지 준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날 시인의 집 앞에는 마을 주민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교수는 “선생님은 오전 일찍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지냈고 ‘좋은 시가 나왔다’며 읽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 씨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취재진이 거의 철수한 오후 9시경에 고은 시인은 귀가했다. 귀가한 시인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이 교수가 대신 받아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귀가한 선생님에게 ‘파무크 씨가 됐다’고 말씀드리자 ‘오, 잘됐네’하며 좋아하셨다”며 “파무크 씨는 지난해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했을 때 선생님과 같은 섹션에서 활동했고 그때 선생님 얼굴을 그려줘 그 그림을 스웨덴에서 번역된 ‘만인보와 그 밖의 시들’이라는 책 속에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성=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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