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누가 더 행복할까…‘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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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를 위한 변명/김시천 지음/269쪽·1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시킨 이 후렴구만큼 동양철학의 고전들을 발칙하게 뒤집는 이 책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추임새도 없을 것이다.

날개가 수천 리에 이르고 9만 리 장천을 난다는 ‘장자’의 대붕 이야기를 읽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대붕과 동일시한다.

소장 동양철학자인 김시천 호서대 연구교수는 정색을 하고 묻는다. 정말 자신을 대붕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논어’에 등장하는 군자와 소인 중에 당신은 누구를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추고 바르게 살까를 고민하는 군자인가, 아니면 어찌하면 편하게 살고 돈을 많이 벌까를 고민하는 소인인가. 속으로 ‘그래도 어찌∼’라고 헛기침하는 사람에게 저자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저자는 여기서 철저히 잊혀진 제자백가의 사상가 양주(楊朱)를 불러낸다. 양주는 묵적(墨翟)과 함께 양묵으로 묶여 유가는 물론 도가에서도 철저히 이단시하는 인물이다. 묵적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라는 겸애(兼愛)의 사상가라면 양주는 ‘내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온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라는 위아(爲我)의 사상가로 알려졌다. 이타주의자인 묵적은 ‘묵자’라는 저서라도 전해지지만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힌 양주는 변변한 저서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저자는 ‘열자’와 ‘여씨춘추’, ‘한비자’ 등에 남아 있는 양주 사상의 편린을 종합해 그가 개인을 발견한 최초의 동양철학자라고 주창한다. 이를 통해 양주는 맹자나 장자가 비판한 극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함을 설파한 ‘소인의 대변자’이자 ‘동양의 에피쿠로스’로 재탄생한다.

저자는 ‘이해관계에 따라 지혜롭게 움직이는 개인’, 곧 소인이야말로 서구 근대성의 출발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도덕군자가 될 수 있고, 돼야 한다는 맹자의 도덕적 평등주의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통사람(소인)과 공익을 추구해야 할 지도층 인사(대인)의 덕목을 차별화할 줄 아는 다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저자의 탄탄한 독서량(한의학·서양철학·인류학 등)과 공자와 맹자, 장자에게 주눅 들지 않고 펼치는 논지의 일관성, 그리고 마치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을 부여하는 서사의 힘에도 숨어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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