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구라모토 “나이 뒤에 숨은 사춘기 순수 같이 찾아요”

  • 입력 2006년 7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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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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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호텔. 푸근한 중년의 아저씨가 초대한 방으로 들어갔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그는 악보 위에 음표를 그려 넣고 있었다. 연방 “불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곡이 쉽게 안 풀리는 듯했다.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 아니, 안녕하세요. 데뷔 20주년 맞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입니다. (이어 일본말로) 매번 악보랑 씨름 한판 하고 나면 늙는데, 이젠 할아버지 다 됐죠?”

일본 출신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55·사진). 1986년 앨범 ‘레이크 미스티 블루’로 데뷔한 그는 1998년 앨범 ‘레미니슨스’ 이후 총 11장의 앨범을 한국에서 발표해 100만여 장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가 한국의 8개 도시를 도는 2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내한했다. 9월 5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서귀포 등을 도는 8개 도시 순회 공연이다.

“20년간 한결같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게 기쁩니다. 그 원동력은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희망을 꿈꾸지 못했다면 난 부러졌을지도 모른답니다.”

지금까지 45장의 앨범을 발표한 그는 ‘레이크 루이지’와 ‘세컨드 로망스’ 등의 음악이 국내 CF음악이나 드라마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한국 팬들의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23차례의 내한 공연을 했고, 신승훈 유열 등 한국 가수들과 합동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한국에서 제 음악이 인기가 높은 이유요? 한국 팬들의 귀가 좋아서 그런 거죠. 하하. 베토벤의 작품 같은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는 공통의 정서가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희망이 아닐까요?”

그의 곡에는 절제된 슬픔과 여유로운 낭만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연주 스타일은 사춘기 소녀의 감성처럼 섬세하고 격정적이다. 그러자 이 중년 아저씨, 부끄러웠나 보다. 그는 곧바로 “나이로 구박하지 말라”는 귀여운(?) 당부를 했다.

“아저씨 아줌마들도 겉으로는 늙었을지 모르지만 사춘기 시절 순수했던 감정은 아마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 감춰두었을 겁니다.”

한국 공연에 이어 연말에는 일본 도쿄, 오사카 등에서 2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다. 인터뷰 말미에 ‘20년 후 계획’을 묻자 그의 음악처럼 낭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뒤에도 살아 있을까요? 살아 있다면 여전히 피아노 두드리고 악보에 음표 그려 넣고 있겠죠. 비록 작곡 속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소녀 같은 감수성은 변함없을 거예요. 그때 되면 진짜 ‘할아버지 소녀’가 돼 있겠죠? 하하.” 02-598-8277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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