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문학소녀…‘풋,’ 등 청소년 대상 문예지 줄이어

  • 입력 2006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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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예지 ‘풋,’의 표지화. 이 잡지를 비롯해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청소년 대상 문예지들이 최근 줄지어 선보이고 있다. 10대들에게 작품 발표의 마당을 제공하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들이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청소년 문예지 ‘풋,’의 표지화. 이 잡지를 비롯해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청소년 대상 문예지들이 최근 줄지어 선보이고 있다. 10대들에게 작품 발표의 마당을 제공하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들이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올여름 창간된 계간지 ‘풋,’(문학동네)은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 13∼18세의 청소년에게 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풋,’뿐 아니다. 최근 1, 2년 새 청소년 문예지들이 줄이어 나오고 있다. 충북지역 교사들이 펴내는 ‘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만드는 ‘푸른작가’를 비롯해 ‘문학아(我)’ ‘미루’ ‘상띠르’ 등이 모두 청소년 대상 문학잡지다. 이들 잡지는 청소년들이 투고한 작품을 싣고,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기획 기사도 싣는다. 올 초만 해도 12개 청소년 문예지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다.》

○ ‘학원’의 부활을 꿈꾸다

청소년 문예지들은 이른바 ‘학원(學園)’의 부활을 꿈꾸며 등장한 것이다. ‘학원’은 1960, 70년대 문학소년·소녀들의 작품 발표의 장이 돼 주었던 잡지. 황석영 최인호 김승옥 윤후명 안도현 씨 등 오늘날 문단의 중진 작가들은 대부분 청소년 시절 ‘학원’을 통해 문명(文名)을 날린 바 있다.

그러나 문학은 이제 청소년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게 현실이다. 하루 종일 TV를 볼 수 있고 들고 다니는 게임기로 아무 때나 즉석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이에 대항하는 문학의 경쟁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학생들이 대학 입시에 매달리면서 학교 문예반 활동도 거의 유명무실해져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습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교사인 김경주 시인은 “2000년을 전후해 기형적으로나마 대학입학시험제도를 통해 인식 변화가 생겼고, 문학소년·소녀군도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입시 논술 때문에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대학에서 문학특기생 제도를 도입해 입시 준비를 위한 문예반이 만들어지면서, 문학에 빠진 마니아 청소년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문학소년·소녀들은 그간 ‘엽서시’(www.ilovecontest.com/munhak) ‘글틴’(teen.munjang.or.kr) 등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게릴라식 문학 활동’을 벌여 왔다. 온라인에서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과 문학행사 정보를 주고받고, 작품을 올리고 서로 품평도 해 온 것. 안양예고, 충북 옥천고 학생들이 백일장을 휩쓴다는 소식도, 올해 명지대 문예창작과 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문인 스타’ 박성준 군의 유명세도 인터넷을 통해 번져 나갔다.

청소년 문예지들은 이렇게 인터넷에서 마련됐던 작품 발표 무대를 지면으로 옮겨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 지망생들의 ‘떡잎’을 살펴보는 한편 궁극적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다는 게 기획 의도다.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진흥실 문학 담당 정우영 시인은 “잡지들이 대개 만든 지 얼마 안 돼 수준이 비슷비슷하지만, 기획력이 돋보이고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이 실리는 잡지들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문예지 관계자들 사이에선 지난해 말 3호를 낸 ‘이다’, 경기지역 문인들이 만드는 ‘문학아’, 올여름 선보인 ‘풋,’ 등이 주목할 만한 잡지로 꼽힌다.

○ “고교 백일장 여전히 선수 많다”

청소년 문예지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에 문인들은 기쁨과 당부를 함께 전한다. 고교 시절 시집 ‘꽃숨’을 내는 등 ‘학생문인’으로 유명했던 문정희 시인은 “문학이 예전처럼 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만 청소년을 매혹시키는 위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반가워했다. 문 씨는 “요즘도 고교 백일장 심사를 해 보면 ‘선수’가 많더라”면서 “그렇지만 청소년 문학지망생들이 문학적 감각과 노하우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학은 재치나 기술이 아니라 고통과 실패를 기꺼이 감내하는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조언이다.

고교 시절 ‘학원문학상’을 휩쓸었던 ‘학원 스타’ 윤후명 씨는 “문학을 당장 대학 가기 위한 수단으로 봐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윤 씨는 “우리 연배는 한국 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한 징검다리를 맡았을 뿐이고, 현재 청소년들은 ‘세계적인 한국 작가’가 될 사람”이라면서 “문학에만 갇혀 있지 말고 문학과 접목할 수 있는 인문학 공부도 하는 등 스케일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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