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여행]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9)

  • 입력 2006년 6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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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고 하자. 상자 안에는 당장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가스 분출 장치가 있고, 가스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분출된다. 상자 바깥에서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한 순간 가스가 분출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전물리학에 의하면 그 고양이는 죽거나 죽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고전물리학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 오직 하나의 세계가 있으며 그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빌려 생각하면 그 고양이의 운명은 우리가 상자 안을 들여다 볼 때까지 결정되지 않는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비로소’ 고양이는 죽어 있거나 살아 있다. 우리가 관찰하기 이전에 그 고양이는 천국과 지옥의 ‘망각지대(limbo)’에 있으며, 상자 안을 들여다 볼 때야 죽거나 죽지 않거나 두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그때까지 고양이는 실재한다고조차 말할 수도 없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는 원자 이하의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일상 언어로 번역할 때 공상과학 소설보다 더 기괴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재는 본질적으로 불확정적이며, 통상적인 의미에서 알고 있는 실재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하지만 미국의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양자역학의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견해는 수용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과학에서 제기된 모든 개념은 어떤 현상의 배후엔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실재가 존재한다고 가정해 왔던 것이다.

봄 역시 일견 카오스적으로 보이는 물리적 현상계, 즉 드러난 외양의 질서의 이면엔 항상 더 깊은, 함축된, 내재적 질서(implicate order)가 깔려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모든 수준에서 외양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무엇과 그 외양을 설명하는 본질로 간주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봄의 이 개념은 우연히 TV를 통해 본 어느 실험에 의해 고무되었다. 그 실험은 한 방울의 잉크가 글리세린이 담긴 원통 속에서 퍼져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글리세린 표면에 떨어진 잉크 방울은 원통이 회전하면 글리세린 속으로 퍼져 안 보이게 된다. 하지만 원통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잉크 방울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잉크 방울은 완전히 사라진 순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내재적 질서’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잉크 방울은 한순간 홀연히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외적 질서) 이는 내재적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

봄은 양자역학과 신비주의 사상을 한데 포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과학자다. 그의 말은 자주 티베트 고승의 가르침을 연상시킨다.

“우주는 결코 분해되지 않는 전체성, 그 내재적 질서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내재적 질서는 ‘존재하는 그것’의 본질적인 차원이다. 존재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실재의 여여(如如)함(suchness)이다!”

인도의 신비주의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봄. 그는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현재의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실재와의 접촉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것.

“과학은, 지성이 결코 파악할 수 없으나 시적(詩的) 직관이 이해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한다….”(막스 플랑크)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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