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물에 잠기는 고구려 고분 보고만 있을건가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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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게 참 애매합디다. 외교 사안으로 봐야 할지, 문화재 사안으로 봐야 할지.”

중국 지린(吉林) 성 윈펑(雲峰) 호 양안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과 성터를 둘러싸고 중국과 한국 학자 사이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천하태평이다. 고분과 성터가 발견된 사실이 보도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어느 부서가 중국 측에 공동조사를 제의해야 맞는지 ‘담당 타령’만 계속하고 있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베이징(北京)에서 쑨자정(孫家正) 중국 문화부장을 만났다. 그러나 윈펑댐 수몰지구에서 발견된 고분과 성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재를 잘 아는 것도 아닌 데다 중국 파트너와의 상견례 자리여서 껄끄러운 주제를 피했다는 게 대사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이는 김하중 대사와 협의까지 마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다음 주면 물에 잠길지도 모르는 고구려 문화재를 놓고 정부가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대응도 않고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중국 땅에서 발견된 고분이긴 하지만 윈펑 호수 기슭에서 발견된 2360기의 고분은 중국 학자도 인정하는 고구려 유물이다.

또 압록강 지류에서 발견된 성터 역시 중국 학자는 “고구려 양식과 구별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학자들은 “축조 양식으로 볼 때 분명한 고구려 성”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 양국의 학계를 위해서라도 공동 발굴은 필요한 작업이다.

게다가 호수 양안에는 미처 발굴하지 못한 고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기자가 현장에서 언뜻 세어 봐도 1000기는 넘어 보였다. 윈펑 호수는 한마디로 한(韓)민족의 대륙 역사이자 고구려 역사의 살아 있는 현장인 셈이다.

곧 다시 수몰된다는 소식에 다급해진 한국 학자들은 뒷돈을 주며 험한 산을 헤쳐 어렵게 현장에 접근했지만 삼엄한 경비에 겨우 눈요기만 하고 돌아오고 있다.

“경비가 하도 심해 사진기를 꺼낼 엄두도 못 냈습니다. 우리 역사를 가지고 이렇게 비굴해서야 되겠습니까.”

고구려 역사 전문가인 한 교수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 며칠째 계속 귓전을 울리고 있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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