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송기흥 ‘나방’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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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 - 송기흥

스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그런데, 어디가 아픈지

몸을 뒤틀며 쓰러지셨다

입적이라도 하셨는가, 들여다보니

온 몸을 떨고 있다

가을볕 부신 툇마루에 잿빛 무늬

가사袈裟의 물결이 아른거린다

생이, 이처럼 떨리는 그 무엇이었다는 건지

생을, 이처럼 진저리치며 살아야 한다는 건지

오래 떠돌다 돌아온 구도자의 심중이

장삼자락 안에서 떨고 있다

다음 생으로 건너가기 직전이다

- 시집 '흰뺨검둥오리'(황금알) 중에서

나도 저 스님들의 입적을 본 적이 있다. 여름날, 하릴없이 모닥불에 달려들어 제 몸을 사르는 저들을 쓸어내며 ‘하찮은 미물들 같으니라구’ 쯧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 그것이 도력 높은 고승의 외마디 임종할(臨終喝)인 줄도 모르고. 저들은 모두 나뭇잎 팔만대장경을 푸르게 독파하던 행자 시절을 거쳐, 제 몸의 고뇌로 자아낸 은빛 토굴에 들어 오랜 면벽수행 끝에 날개와 하늘을 얻은 자들이 아닌가. 저 늙은 은자들이 자신의 죽음과 주검을 적나라히 드러냄은 무슨 뜻인가. ‘떨림’과 ‘진저리’야말로 삶의 요체인즉, 살아서 온몸으로 진저리치다가 오라고. 저 스님 낡은 가사를 접고 징검다리를 건너며.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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