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11>꿈의 높이 8,848미터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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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산을 사랑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 순례가 내 목적이다… 떠나오기 전에 고향 사람들은 나에게 왜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말 그대로 단순한 대답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기 때문이라고. 반드시 최연소 등정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오르고 싶은 것뿐이다. 기록이나 남의 이목이 아니라 정상이 목표다. 무명으로 오를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본문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어 했던 아이가 있었다.

열세 살, 키 184cm, 몸무게 79kg의 어른 체격을 가진 소년의 이름은 마크 페처. 이 책은 열두 살 때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 페처의 순수한 영혼이 겪은 ‘산을 향한 순례기’라고 해야 옳다. 대부분의 독자는 10년 전 미국의 매스컴이 그러했듯이 주로 페처의 최연소 등정 기록에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게 얼마나 큰 오해인지 곧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에서도 기술하고 있듯이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정상부와 4캠프 일대에서는 무려 여덟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해발 8000m의 4캠프에 있었던 페처는 죽음의 신으로부터 벗어난 생존자로도 유명해졌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던 이 사건은 역시 생존자 중 한 명인 존 크라카우어가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라는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크라카우어보다 2년 늦게 출간된 페처의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당시 사망한 상업원정대의 두 대장 랍 홀이나 스콧 피셔 같은 뛰어난 등반가에 대한 따스한 배려와 추모의 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을 향한 순례’에서 만난 페터 하벨러, 엘리슨 하그리브스, 아나톨리 부크리예프, 엘리자베스 홀리, 에드먼드 힐러리 경 같은 유명 산악인은 물론 무명의 산악인들, 죽었거나 생존해 있는 이들 모두 페처의 투명한 영혼의 거울에 비친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페처의 책이 지닌 독창성이며, 평범한 ‘청소년 도서’나 ‘산악도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페처는 구도의 길을 떠난 ‘화엄경’의 선재동자와도 같다. 페루의 피스코와 우아스카란, 에콰도르의 코토팍시,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 그리고 에베레스트를 거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와 히밀라야 6위 높이를 자랑하는 초오유 등정에 이르기까지 겪은 고난과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감히 상상도 못 할 체험. 그에 더하여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집으로 돌아왔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어찌 그리도 선재동자와 흡사한지. 하여튼 이 책을 통해서 산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산을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산을 향한 순례가 목적이었던 순수한 정신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소중한 일이다.

‘Within Reach-My Everest Story’라는 제목으로 1998년 출간된 이 책은 미국도서관협회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저자인 페처는 동기 부여 강사로서 각급 학교에서 자신의 체험을 소개하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김우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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