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문명의 화해 공자의 말속에…‘문명들의 대화’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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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들의 대화/뚜웨이밍 지음 김태성 옮김/392쪽·2만 원·휴머니스트

“철저한 유가(儒家)사회는 가장 잔인하다. 순수한 법가(法家)사회보다 잔인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철저하게 유가화된 정치 지도자는 (국민에게) 정치권력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도덕적 역량 또한 요구한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뚜웨이밍(杜維明·66) 교수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각각 등장하는 한국의 5000원권과 1000원짜리 지폐를 보여 주며 “유학자가 이렇게 대접받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는 현대 유교철학자 중 가장 세계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저작들을 읽다 보면 그가 과연 유교철학을 대표할 만큼 심오한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문명들의 대화’라는 주제에 대한 그의 최근 강연과 인터뷰, 논문을 모은 이 책은 그런 의문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을 던져 준다.

그것은 그가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는 ‘문명들의 대화’를 그 스스로가 절묘하게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에서 태어나 대만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국 지식사회의 고민에 대한 정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교 경전에 실린 지혜를 일종의 카운슬링 교재로 활용한다.

먼저 미국사회의 고민에 대한 그의 통찰은 서구화-현대화-세계화라는 단어의 정밀한 개념 분석에서 빛난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이 세 단어는 같은 뉘앙스를 지닌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서구화는 공간적 개념인 반면 현대화는 시간적 개념이다.

‘서구화’가 시장경제와 민주정치, 시민사회, 개인의 존엄을 배태한 유럽이라는 특정 공간에 대한 모방을 의미한다면 ‘현대화’는 유럽을 건너 미국으로 다시 제3세계로 확산돼야 할 운명을 지닌 역사적 보편성을 지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종언론은 이런 인식의 귀결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여기서 ‘세계화’라는 차별점이 등장한다. 세계화에는 강력한 동질화라는 구심력과 함께 강력한 지방화라는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전 이후 미국의 문제는 이런 차이를 간과한 채 현대화=미국화=세계화로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문명들의 대화, 정확히는 문명들의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그의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에게 대화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반성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남을 이해해 자신의 시야를 확대하는 것이다.

현대 유교의 의미도 여기에서 도출된다. 유교 윤리의 핵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전근대적 삼강을 폐기하고 오륜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은 유교문명이 서구문명과의 대화에서 얻는 자기반성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다.

또한 문명 간 대화의 제1 원칙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도 베풀어라’라는 예수의 가르침(복음의 원리)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는 공자의 가르침(용서의 원리)이 필요하다는 성찰 또한 문명의 대화를 통해 재발견되는 유교 지혜의 진면목이다. 원제 ‘對話與創新’(2004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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