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부르는 ‘오, 사랑하는 아버지’…소프라노 조수미

  • 입력 2006년 5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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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소프라노 조수미(44·사진) 씨가 1986년 이탈리아 트리스테 베르디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데뷔한 지 20주년이다.

조 씨는 16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독창회를 연다. 성남시립교향악단의 반주에 맞춰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세비야의 이발사’ 등에 나오는 아리아들과 가곡 ‘선구자’ ‘강 건너 봄이 오듯’, 영화 ‘시네마천국’ ‘접속’ 주제가 등 클래식과 가곡, 영화음악을 들려 줄 예정이다.

조 씨는 5∼6월엔 북미 순회공연을 하고 9월부터 서울과 지방 8개 도시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8월 30일 호암아트홀에서는 처음으로 마스터 클래스(공개 레슨)도 무료로 열 계획이다.

13일 귀국한 조 씨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성당 내 납골당 ‘평화의 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곤 3월 31일 별세한 아버지 조언호 씨의 유골함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달 4일 아버지의 장례식 때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 서 있었다. 독창회 티켓이 오래전에 다 팔린 데다가 공연 실황을 DVD로 녹화하기 위해 30여 명의 스태프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연을 취소할 수 없었던 것.

이날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고음의 목소리로 노래를 모두 부른 후 조 씨는 프랑스어로 관객들에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지금 서울에서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버지도 제 노래를 잘 듣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조 씨가 아버지를 위한 앙코르 곡으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부르자 객석은 숙연해졌다. 노래가 다 끝난 후 청중은 모두 일어나 10여 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내며 조 씨를 위로했다.

16일 독창회에서도 조 씨는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앙코르 곡으로 부를 계획이다.

무역업을 했던 조 씨의 아버지는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소개 책자를 외동딸에게 갖다 주며 성악가의 꿈을 키워 주었다. 1984년 조 씨가 서울대 음대 2년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딸의 비행기 티켓과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해 밤새도록 잠 못 이루며 고민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탈리아에 와서 제가 살던 셋방에 들르신 아버지는 ‘피아노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안타까워하셨어요. 다음 날 제 손을 잡고 나가 중고 피아노와 새 셋방을 구해 주셨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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