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태동]능동적 삶 원한다면 책을 읽어라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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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에서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23일)을 기념해 책읽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인은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진 듯 지식의 샘과 같은 책읽기를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10명 중 9명은 하루 책을 읽는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청의 최근 발표가 있었다. 반면 TV 시청이나 인터넷 게임과 같은 소모적 영상매체에 하루 5시간이 훨씬 넘는 아까운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이 통계는 우리가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환상세계와 다름없는 영상매체에 매달려 점차 그것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 주는 듯해 적이 걱정스럽다.

기계문명은 인간을 고역에서 구해 주었다. 하지만 르네 뒤보(미생물학자·1972년 스톡홀름 인간환경선언의 리더)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면, 결국에는 ‘빵’마저도 박탈당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현실세계가 아닌 판타지 세계에만 집착하는 인간은 자연과 사회로부터는 물론 자기 일의 의미로부터도 소외된다. 끝내는 자신의 존재 의미와도 단절되는 불행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단절은 조반니 바티스타 비코(계몽기 이탈리아의 사상가)가 문명의 마지막 단계에 찾아올 것이라고 묘사한 ‘고독’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영상매체에 대한 몰입이나 탐닉은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정신적으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황폐화한다. 왜냐하면 수동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은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해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자기 파괴의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 영상매체 시대에 인간이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읽기와 글쓰기일 것이다. 보통 우리는 자아발견을 위해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부조리하게도 여가를 즐기는 자유시간에서는 쉬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다. 자아의 발견은 수동적이고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크고 작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삶의 의지와 가치가 숨쉬는 깊은 곳까지 움직이게 할 정도로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책읽기와 글쓰기는 수동적인 삶에 대한 절대적인 해독제 내지는 훌륭한 교정수단이 될 수 있다. 또 인간에게 스스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해 준다.

책읽기의 필요성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능동적 독립성을 토대로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아(혹은 휴머니즘)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대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구체화시킨다. 그런데 만일 우리 국민이 지금처럼 계속 책을 외면하고 영상매체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민주주의도 성숙한 단계로 이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피땀 어린 희생으로 이룩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다음 단계의 원동력은 책읽기와 글쓰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책의 날’을 보내면서 책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의식 전환이 없다면, 급변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에게는 꺼지지 않는 희미한 빛이 있다. 그들을 계속 걷게 하라. 걷게 하라. 어둠이 그들을 침몰시키지 못하도록.”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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