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의 사기꾼·지식의 사기꾼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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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의 완성자로 꼽히는 2세기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그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의 연구 결과를 마치 자신이 관찰하고 측정한 것처럼 도용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던 그가 만든 천문지도가 그보다 위도가 더 높은 그리스에서 만든 것임이 밝혀지면서 들통이 났다.
‘천동설’의 완성자로 꼽히는 2세기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그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의 연구 결과를 마치 자신이 관찰하고 측정한 것처럼 도용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던 그가 만든 천문지도가 그보다 위도가 더 높은 그리스에서 만든 것임이 밝혀지면서 들통이 났다.
◇과학의 사기꾼·지식의 사기꾼/하인리히 창클 지음·도복선 김현정 옮김/각각 240쪽 내외·각 권 1만 원·시아

지난해 말 한국 사회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사건으로 ‘공황(恐黃)’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독일의 수의학박사이자 인간유전학박사인 하인리히 창클 카이저스라우테른대 교수가 세계과학사의 추문들을 정리한 이 책을 읽노라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에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천동설’을 완성한 2세기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의 관찰 결과를 마치 자신이 관찰한 것처럼 표절했고, 실험 자연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갈릴레이도 자신의 머릿속 실험을 실제 실험결과인 것처럼 위조했다. 근대 물리학의 제왕 뉴턴과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도 자신의 이론에 맞지 않은 실험결과가 나올 경우 오늘날 ‘데이터 마사지’라 불리는 조작을 감행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제자의 이론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과학자들을 재단하는 것보다는 20세기 과학윤리가 확립된 뒤 벌어진 사례들을 대할 때 더욱 기가 막힌다.

1981년 세계적 심장전문의 유진 브론월드 하버드대 교수는 2년간 100권에 가까운 실험보고서를 발표한 자신의 제자 존 돌란드 달시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겼다. 그러나 동료 연구원들은 달시의 실험에 의구심을 품었고, 그가 불과 몇 시간 만에 2주짜리 실험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면서 9편의 논문과 21편의 실험보고서가 조작됐다는 것이 밝혀져 달시는 파면되고 브론월드 교수의 연구도 한동안 중단됐다.

미국에서 아동자폐증의 권위자로 군림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브루노 베텔하임은 1996년 숨을 거둔 뒤에야 심리학박사는커녕 대학에서 미술사 몇 과목을 수강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음이 들통 났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실험이 가짜였으며 아동학대 전력까지 있음이 밝혀졌다.

이라크 출신의 알사브티라는 가짜 의학박사는 1975년부터 기본적 의학실험에 대한 지식도 없이 이라크 정부와 요르단 국왕, 미국의 의료기관 수장들의 환심을 산 뒤 가짜 실험과 표절 논문을 수없이 발표하며 대가 행세를 하다가 잠적했으나 지금도 이름을 바꿔서 유령 의학 전문가로 떠돌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엄밀성과 진실성을 표방하는 과학이 얼마나 농락당하기 쉬운 순진성을 간직하고 있는가. ‘믿으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로널드 레이건의 말이 국제정치무대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원제 ‘F¨alscher, Schwindler, Scharlatane’.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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