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8년 베트콩 즉결처형 사진 보도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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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일 한바탕 총격전이 휩쓸고 지나간 사이공(현 호찌민)은 조용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주도한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 이틀째 날이었다.

이때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쩔런 거리가 시끌시끌해졌다. 남베트남 군인들이 건물에 숨어 있던 베트콩 한 명을 생포한 것. 그를 거리로 끌어내자 응우옌응옥로안 경찰국장이 나타났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총을 겨눴다. 손이 뒤로 묶인 베트콩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총알은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말 그대로 즉결처형이었다.

이 장면은 마침 이곳에 있던 에디 애덤스 AP통신 사진기자의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 로안 국장이 총을 꺼낼 때만 해도 포로를 심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애덤스 기자는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총을 발사한 국장은 애덤스 기자를 향해 말했다.

“그는 우리 군과 당신네 군을 많이 죽인 놈이야. 부처님도 나를 용서하실 걸세.”

처형된 포로는 바로 직전에 로안 국장의 부하와 그 가족을 죽인 인물이었다.

이 사진은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사이공식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이 사진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선악 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으며 반전운동에 불을 붙였다.

로안 국장이 원했던 ‘부처님의 자비’도 비켜 갔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때 그 사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끊임없이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

애덤스 기자도 이 사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 사진을 자신의 스튜디오에 전시조차 하지 않았다. 인간의 잔인함이 뚝뚝 묻어나는 사진으로 유명해진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는 특히 사진이 로안 국장을 ‘절대 악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후 애덤스 기자는 자주 말했다.

“사진은 절반의 진실을 얘기할 뿐이다.”

이 사진이 공개되고 4년 후 전쟁의 비정이 서려 있는 또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됐다. 미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화상을 입은 아홉 살짜리 소녀가 벌거벗은 채 사이공 거리를 달려가는 사진이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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