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작지만 큰 창작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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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하룻밤의 사연을 담은 창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출연 배우들. 사진 제공 이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룻밤의 사연을 담은 창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출연 배우들. 사진 제공 이다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의 ‘연우소극장’으로 가라.

‘연우소극장’이라는 말에 벌써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올지도 모른다. 엉덩이 푹신하고 등받이 편한 대학로 소극장도 많건만, ‘연우소극장’의 객석은 여전히 딱딱하니까.

하지만 창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대신, 1시간 40분 동안 밝은 웃음과 훈훈한 감동으로 메마른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배경은 무료 가톨릭 의료시설. 반신불수의 환자 최병호가 밤사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원장 베드로 신부는 전전긍긍한다. 기부금 모금을 위해 다음 날 방송사의 성탄특집 생방송에 최병호 인터뷰를 주선해 놓았기 때문. 그는 최병호와 사이가 나빴던 알코올의존증자 정숙자와 치매 노인 이길례, 순진한 자원봉사자 정연, 그리고 의사 ‘닥터 리’를 불러 최병호의 행방을 추적한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의 일을 추리극처럼 다루는 과정에서 등장인물의 과거와 사연이 소개된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이런 소재를 가지고도 발랄하고 대중적인 뮤지컬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수작(秀作)이자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밝은 희망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대본, 작사와 연출까지 맡은 스물아홉 살의 젊은 연출자 장유정 씨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끈을 양손에 쥐고 적절한 순간에, 제대로 당길 줄 안다.

충직한 성직자와 기부금을 노리는 원장의 양면을 오가던 베드로 신부가 능청스럽게 “최병호는 사라졌지/교회는 대책없지∼”하며 랩을 시작하면 객석은 말 그대로 웃음바다가 된다.

최병호의 사연과 병원 식구들의 따뜻한 음모(?)가 밝혀지는 후반부가 되면 웃음이 터져 나오던 객석 여기저기에선 훌쩍임이 들린다. 상투적인 끝맺음이 아닌 재기발랄한 결말도 유쾌하다.

물론 최병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의 당위성 부족과, 한두 가지 개그식 농담, 그리고 몇몇 배우의 가창력 부족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결점이 작품의 재미를 결코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상처는 깊이만 있을 뿐 크기는 없어서 누구의 상처가 더 큰지 알 수가 없대” 등 공들인 대사는 곱씹을 만하다. 라이브 3인조 밴드의 연주, 특히 기타 연주는 이 뮤지컬에 감칠맛을 더한다. 내년 1월 8일까지. 화 목 금 오후 8시, 수 오후 4시 8시. 토 일 오후 3시 6시. 1만5000∼2만 원. 02-762-001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올렸다하면 히트… 대학로 ‘예종 파워’▼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빨래’ ‘거울 공주 평강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모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만든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라는 것, 둘째 모두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거나 받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 셋째 모두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의 학생 졸업 워크숍 공연이었다는 것.

요즘 공연계 기획자들이 주목하는 집단은 예종이다. 대학로의 ‘프로’ 기획자들이 좋은 작품을 선점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아마추어’인 예종 학생의 워크숍 공연을 직접 가서 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는 2003년 예종의 졸업 워크숍 공연들이 실제 상업용 공연으로 다듬어져 잇달아 성공을 거둔 이후 벌어지고 있는 현상. 올해 공연계에서 ‘예종 바람’은 거셌다.

예종의 연극원 무용원 음악원 출신들이 뭉쳐 만든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의 첫 작품인 ‘거울 공주…’는 올해 밀양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여자 연기상을 휩쓸며 “기존 공연들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연출가 이윤택)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거울 공주…’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내년부터 대학로에서 무기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예종 출신인 추민주 씨가 연출하고 예종 출신들이 주축이 된 극단 ‘명랑 씨어터 수박’의 ‘빨래’ 역시 올해 초연 후 호평에 힘입어 내년 2월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이달 초연된 ‘오! 당신이 잠든 사이’도 대본과 작사 연출을 예종 출신 장유정 씨가 맡은 것을 비롯해 음악, 안무 등 주요 스태프가 모두 예종 출신이다. 배우 중 절반 이상이 예종에서 동문수학한 사이.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예종 출신들의 작품은 워크숍을 통해 기본 검증을 거치는 데다 기성 연출가들에 비해 관객과 교감하는 능력이 크기 때문에 작품이 쉽고 재미있다”며 “예종 출신 젊은 연출가들의 경우 대부분 극작도 부전공으로 공부해서 그런지 드라마가 탄탄한 것이 또 다른 장점”이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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