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과 화선지 필수아닌 선택…한국화는 변신중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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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서양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화의 변신이 눈부시다. 오늘날 한국화는 산수초목 대신 도시 풍경이 들어서고 수묵의 변주도 다채롭다. 한지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김병종 작 ‘생명의 노래’ 시리즈.
도도한 서양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화의 변신이 눈부시다. 오늘날 한국화는 산수초목 대신 도시 풍경이 들어서고 수묵의 변주도 다채롭다. 한지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김병종 작 ‘생명의 노래’ 시리즈.
《늦가을 화단에 한국화의 변신이 눈부시다. 오늘날 한국화는 재료와 소재에서 흔히 생각하는 통념을 깬다. 산수초목(山水草木) 대신에 도시 풍경이 들어서고 수묵의 변용과 다양한 재료가 눈에 띈다. 도도한 서양화의 물결 속에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화단의 움직임은 21세기 문화 퓨전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수묵만이 한국화의 재료는 아니다

▽김병종전=‘생명의 노래’를 꾸준히 그리고 있는 한국화가 김병종(52·서울대 미대 교수) 화백의 화면은 흡사 흙바닥 같다. 작가는 2년 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분청사기의 수수하면서도 텁텁한 모습을 화폭에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뽀얀 화면 위에 먹이나 푸른색으로 학(鶴) 산 물결 물고기 등을 빽빽하지는 않게, 약간은 허하게, 미완성인 듯 드문드문 그려 넣은 작품이 많다. 작가는 직접 만든 닥종이 판 위에 한지를 풀처럼 쑤어 붙여 부조의 느낌을 만들고 여기에 먹과 동양화 안료로 채색하는 방식을 쓴다.

1년 6개월 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는 근작 40여 점이 선보이는데 꽃 나무 나비 새 학 말 닭 물고기 등이 서로 마주 보고 있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모양이 따뜻하고 화면도 밝고 화사해졌다. 24일∼12월 7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02-737-2504∼5)

▽차명희전=25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 화랑(02-733-5877),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2)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는 1983년 첫 개인전 이후 20차례 전시를 연 한국화계의 중견. 선긋기가 특징인 그의 작품은 언뜻 서양 추상화 같다.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목탄과 아크릴 물감을 갖고 작업한 100호 크기의 화면은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 뒤덮여 있다. 종이 위에 회흑색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흰색 아크릴로 가벼운 터치를 한 뒤 길고 짧은 일정하지 않은 선을 긁어내 만든 화면들은 무채색의 공간에 묵직한 청각적 울림을 준다. 화선지나 먹을 쓰지 않으니 한국화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재료가 무엇이든 사유의 공간을 많이 내포하는 그림을 그릴 뿐 동서양화라는 구분에서는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 작가의 말.

○산수만이 동양화의 소재는 아니다

▽박능생전=대전을 근거로 중앙화단과 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수묵을 재료로 흑백 화면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산수대신 변화무쌍한 현대 도시 풍경이 담겨 있다.

‘집 앞 풍경’ ‘모란시장’ ‘건널목에 서다’ ‘남포동 거리에 서다’ 같은 작품 제목들이 말해주듯 자동차, 고층빌딩, 도시 야경이 서양화적인 구도와 시점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묵화이면서도 동양화처럼 느껴지지 않는 현대적인 미감이 돋보인다. 30일∼12월 6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아트센터(02-733-9512).

▽박병춘전=전시 제목 ‘낯선, 어떤 풍경’이라는 말 자체에 한국화의 전통 형식과 관념을 깨는 자유분방한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작가의 취지가 담겨 있다. 작가는 모필로 세밀하게 그려 넣은 가로 세로 선을 통해 긴 세월 강과 비바람에 의해 퇴적된 단층들을 고스란히 묘사해 놓았다. 그러면서 화면 구석구석에 조그만 빨간 우체통, 새파란 수박, 수학여행 풍경들, 혼자 선 청년, 데이트하는 남녀 등을 그려 넣었다.

이 생뚱맞은 사물들의 배치는 수묵이라는 낯익은 재료에 현대성을 강조하는 포인트가 되어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쌈지(02-736-0088).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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