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12분


◇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존 해밀턴 지음·승영조 옮김/464쪽·1만8000원·열린책들

18세기의 난봉꾼, 카사노바. 그는 글쓰기의 역사에서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그는 여성들을 이용하기보다는 존중했다. 그 보답으로 여성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정작 카사노바가 열렬히 사랑한 것은 책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군인, 외교관, 배우, 댄서, 관료, 사기꾼, 스파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던 카사노바. 그는 기구한 생애를 항상 여성과 함께했듯이, 항상 글을 썼다.

40여 권을 헤아리는 그의 저서 목록에는 ‘폴란드 사회 불안의 역사’ ‘철학자와 신학자’ ‘도덕, 과학, 예술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가 눈에 띈다. 말년엔 열두 권짜리 회고록도 집필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도 그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계시가 되고, 무슨 생각을 하든 책이 되었다!”

‘저술 출판 독서의 사회사’, 책에 관한 일화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이 책에서 카사노바는 번듯하게 제자리를 찾는다.

이 ‘책에 대한 책’에는 책의 집필, 출판, 판매, 수집, 보관, 독서에 대한 얘기가 너무(?)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애서가들이 혹할 만한 저명한 작가들의 에피소드가 즐비하다.

너무도 경건해서 ‘크라이스트대의 숙녀’로 불렸던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 그는 침대에서 뒹굴며 시를 썼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썩은 사과 궤짝이 옆에 있어야만 시를 썼다. 썩는 냄새가 영감을 자극했다고.

예로부터 작가들은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5세기 중반 활판 인쇄술을 선보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돈독이 잔뜩 오른 인사의 시초였다.

작가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책으로 돈을 버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18세기에는 읽을 줄 몰라서 그걸로 밥벌이를 할 수 없었고, 20세기에는 누구나 쓸 줄 알아서 그걸로 밥벌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작가도 품팔이에 나설 수밖에. T S 엘리엇은 은행에 다니는 게 끔찍이 싫었지만 “자유를 얻자고 단칸방에서 살 수는 없었다”. 조지 고든 바이런은 돈을 보고 결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윌리엄 포크너는 운이 좋았다. 그가 일하던 우체국은 워낙 크고 널리 퍼져 있어서 은신할 곳이 많았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었다. D H 로런스도 우편실에서 일했다.

하지만 월트 휘트먼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46세에 어렵사리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나 6개월 만에 잘리고 만다. 상관은 그가 정부에 바칠 시간에 ‘풀잎’을 고쳐 쓰고 앉아 있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원제 ‘CASANOVA WAS A BOOK LOVER’(2000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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