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김언희/얼음여자

  • 입력 2005년 7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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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여주마

얼음답게, 몸 속을

드나드는 톱날들을 환히

보게 해주마

물이 되는 살의 공포, 나를

썰음질하는 실물의

톱니들을

만지게 해주마...얼음

톱밥, 물이 되는

시간의

닭살들을

2

얼음톱밥에

삶은 피를 끼얹어 먹는 팥빙수

비벼 먹어라 겁내지 말고

무색무취가 무섭대서

색소로 물들인

노랑 주황

얼음 핏방울

- 시집 ‘트렁크’(세계사) 중에서

썰어주마. 톱날답게. 시리도록 투명한. 얼음간을 지나. 얼음쓸개를 지나 쓱싹 쓱싹-. 네 얼음등골을. 빼먹어주마. 어미의 등을. 파먹고 자라는. 거미새끼들처럼. 풍기어 달아나는. 얼음톱밥들. 낱낱이 썩어. 물이 되도록 해주마. 코를 찌르는. 무색무취의 얼음 추깃물. 선지를 얹어. 비벼먹으마. 낼 모레 중복날. 남근석 같은. 선돌 그늘 아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열두 아들과. 수캐들만. 모여라. 썰면 썰수록. 녹으면 녹을수록. 출렁 엉겨 붙는. 얼음의 피를 마셔라. 어머니. 누나. 여동생이. 강물처럼 흘러요. 푸릇푸릇. 돋아나는 얼음잎. 얼음그늘.

반칠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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