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0년을 향한 성찰과 전망]<5>피에르 레비 교수

  • 입력 2005년 5월 26일 17시 00분


코멘트
피에르 레비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사이버공간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인터넷의 도래가 낳은 우리 삶의 변화를 새로운 문명의 탄생으로 파악한다. 신석기시대 인류가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는 방법을 통해 생명재배의 혁명을 이뤘다면 오늘날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공간의 창출로 상징적이고 문화적 생명재배의 혁명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집단적 지성'(collective knowledge)과 '누스페어'(noosphere·정신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초현실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 각종 정보와 지식을 집적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집단적 지성'을 성취하게 됐고, 이의 발현을 통해 개개인의 정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차원의 '영성적 교류의 장(누스페어)'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정보의 경제'라는 주제로 인터넷 정보혁명의 인류학적 문명사적 의미를 발표한 그를 김성도(金聖道·언어학) 고려대 교수가 25일 오후 고려대 우당관에서 만나 대담을 펼쳤다. 5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방한한 레비 교수는 멋진 수염을 기르고 나타났으며 자신이 독실한 불교도라고 밝혔다.

▽김성도=당신은 사이버공간 이론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알려져 있다. 마샬 맥루한 등 다른 미디어 이론가들과 비교해 당신의 고유한 시각은 무엇인가?

▽레비=첫째 정보 사회를 인류학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언어, 테크놀로지 등은 인간의 고유한 사실로서, 동물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5000년 전부터 발생한 인류 문화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문자 발명, 활자 발명, 매스 미디어, 디지털 미디어 등 언어의 상징력의 연속적 증가를 주목한다. 나는 이 같은 언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정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의 실현화(hominisation)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본다. 둘째, 나의 미디어 이론은, 다른 미디어 이론가들에 비해서, 사변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실천과 현실에 입각한다.

▽김=이번 고대 100 주년 기념 학술 대회에서, 당신은 이제 인류가 새로운 문명 속에 진입하는 과정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같은 새로운 문명을 '정보 경제'(Economy of Information)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었다.

▽레비=경제(economy)와 생태환경(ecology)은 모두 '집' 또는 '더불어 살기'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그런 맥락에서 정보 경제란 정보의 마케팅과 소비와 같은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종류의 생각들의 생태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계화 문명과 더불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의 절대적 증가, 더 많은 관광, 사업, 유학 등 더 많은 사람들의 이동을 목격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 차원의 미디어계(mediasphere)의 발현을 목격한다. 기술, 종교, 정치, 등, 모든 인류의 사상과 아이디어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세계적 차원의 공통적인 에코 시스템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신석기 혁명과 더불어 인류가 최초로 동물을 사육하고, 농업을 실행함으로써 생물학적 생명을 제어할 수 있었던 변화에 비교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상징적 생명과 문화적 생명을 제어할 수 있다.

▽김=당신은 이번 강연에서 새로운 문명 속에서 한국은 특권적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

▽레비=무엇보다 내 주장의 근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새로운 정보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한국은 타 국가에 비해서 월등하게 많은 사용자수를 자랑하며, 초고속 인터넷망을 비롯하여 정보 인프라 구축이 탁월하다. 그 다음으로, 한국이 지닌 문화적 개방성이다. 한국은 서구의 과학, 기술, 종교 등 서구의 문화 전반을 개방적 마인드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동양의 문화적 전통과 뿌리를 보존하면서, 동서 문명의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갖고 있다. 정리해서 말하면, 한국인들의 이 같은 문화적 혼용과 지식을 향한 열린 마음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김=당신의 유명한 개념인 '집단적 지성'은 18 세기 프랑스의 백과사전파에서 기획된 모든 인간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체계화시키려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개념은 당신의 배타적 개념인가?

▽레비=집단적 지성과 유사한 개념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제시되고 있다. 지구적 지능(global brarin), 결합 지성(intelligence connection), 배분적 인지(cogniton of distribution) 등 유사한 개념들이다. 물론, 이 같은 유사한 개념이 동시대적으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사상가가 의도적으로 유포시킨 것도 아니다. 집단적 지성은 현 시대의 지식체계(episteme)다. 집단적 지성은 결코 전체주의적 집단성을 뜻하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개인의 지능, 개인의 자유, 개인의 특이성,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며, 이같은 개인의 능력들이 만발하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집단적 지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더 완벽하게 변형 중에 있다. 그것의 인간 사고의 완벽화, 문화적 자원, 경제적 자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집단적 지성의 새로움은 지식 경영 차원에서 체계적이며 명시적이며,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백과사전파의 등장은 활자기술의 발견과 엄청난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단적 지성은 인간 지식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백과사전파의 기획을 닮았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과 사고의 방향에 대해서 세심한 배려를 하는 동양적 사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뉴 미디어의 출현 이후에도 인문과학은 대학 교육 차원에서 미디어를 생각할 수단과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미디어를 적대적으로 간주한다.

▽레비=이 같은 현상은 매우 유감이다. 새로운 정보 처리 테크놀로지는 그것 자체가 매우 풍성한 해석학적 재원이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식, 인간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 근본적인 문제를 재정의 하게 만든다. 고전적 휴머니즘과 해석학 전통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예컨대, 역사학 전공자는 정보 처리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그 이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의 도구적 비전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문명에서, 인문과학은 지식의 본질, 전달 방식, 교육의 본질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재사유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자연 과학에 비해서 인문과학은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보 기술과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활용하여 새로운 이론과 모델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학에서 교육의 역할 자체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김=인문학의 핵심적 개념인 텍스트 개념은 사이버공간의 세계에서 해체되는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레비=책과 텍스트 개념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의 특정 매체와 형식으로서의 책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라도 그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다. 활자의 역할은 미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는 사라질 수 없다. 텍스트의 문명은 이제 막 도래한 상태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공명을 줄 수 있는 의미의 지대가 열리고 있다.

▽김=당신은 웹이 인류 커뮤니케이션 문명의 변천을 완결 짓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자료들이 가상적으로 상호 연계되며, 모든 인류의 기호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 언어의 궁극적 단계인가.

▽레비=그렇지 않다. 디지털화는 결코 종료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활자 자료는 디지털화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마치 농업의 시초 단계처럼, 특정 토양에서 쌀, 밀, 옥수수 등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던 것처럼, 웹의 공간 역시, 그것의 잠재력을 알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김=당신은 사이버스페이스와 웹을 가리켜 아이디어의 생태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웹과 인터넷이 그렇게 생각처럼 생태적인 것 같지는 않다. 게임에 몰입해서 사회적 정서적 인간성을 상실하는 젊은이들이 양산된다.

▽레비=내가 말하는 생태시스템은 가치판단을 수반하는 개념이 아니다.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비디오 게임에 몰두해서, 가족과의 식사를 거부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난다. 상당수의 비디오 게임이 형편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게임들이 존재한다. 나름대로 복잡한 전략을 요구하며, 학습과 노동에 대한 개념을 요구하며, 나름대로의 심미성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이 같은 게임들 속에서, 새로운 공적 공간의 창출 가능성과 새로운 사회화 과정을 목격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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