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스탄불-세계사의 축소판, 인류 문명의 박물관’

  • 입력 2005년 4월 8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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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세계사의 축소판, 인류 문명의 박물관/이희철 지음/224쪽·1만2500원·리수

비잔틴과 오스만튀르크 두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책이다. 카누니 술탄 술레이만 시대에 이스탄불에 왔던 부스벡 프랑스대사는 “이스탄불은 세계의 수도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정학적인 조건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스탄불은 흑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의해 유럽 쪽과 아시아 쪽으로 나뉘어 있다. 이 해협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대교와 파티흐 술탄 메흐메드 대교는 두 대륙을 잇는 다리다.

이스탄불은 대륙과 대륙에 걸친 도시, 기독교와 이슬람제국의 중심지였다는 역사 때문에 종교 갈등이 두드러지는 이 시기에 주목받을 만한 갖가지 특이한 문화유적들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성 소피아 성당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세 번 지어졌다. 두 번은 시민반란 때 불탔다. 세 번째 건설에 나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영광을 보일 압도적 규모로 지으라’고 지시했다. 결국 바닥에서 중앙 돔까지 높이가 56.6m나 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1453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메흐메드 술탄이 콘스탄티노플(비잔틴제국 시대의 이스탄불)을 정복했지만 성 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결국 이 성당의 기독교 성화는 회칠로 덮였고 이슬람 사원이 됐다. 지금도 회칠이 벗겨지면 기독교 성화가 나오는 이유다.”

이스탄불의 대표 궁전인 톱카프 궁전에는 궁전의 여인들만 거주한 ‘금남(禁男)’의 지역인 하렘이 있다. 보통 이슬람 황제들의 소실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카페스(새장)’라는 방에 대한 이야기는 오스만튀르크 전통의 하나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메흐메드 2세 때부터 시작해서 160여 년간 오스만제국 황실에는 형제 살해의 전통이 이어졌다. 황제가 재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메흐메드 3세는 무려 19명의 형제를 죽였다. 선대 황제의 부인들은 새 황제에게 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메흐메드 3세가 죽자 남은 남성 혈육은 2명뿐이었다. 그중 하나를 죽인다면 왕가의 혈통 유지도 힘들 정도였다. 결국 재위에 오른 메흐메드 1세는 동생을 죽이지 않고 격리 수용시키기로 했다. 바로 ‘카페스’라는 방에 가두는 것이었다.”

지은이는 터키에서 공부하고, 거기서 외교관 생활을 해 왔다. 그가 현지에서 살펴본 터키의 역사와 문화가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어우러진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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