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 아줌마]<上>아줌마의 발

  • 입력 2005년 2월 1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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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에 희망 담아요”서울 강서구 등촌자활후견기관에서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만드는 김숙재 씨. 김 씨는 “일은 고되지만 자식 같은 아이들이 내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도시락에 희망 담아요”
서울 강서구 등촌자활후견기관에서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만드는 김숙재 씨. 김 씨는 “일은 고되지만 자식 같은 아이들이 내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아줌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활동이나 실천도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 잠재력 높은 사회집단입니다.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줌마들은 그 역할의 재발견을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내고 있습니다. 아줌마의 손과 발, 눈과 입이 부지런히 제 역할을 하는 현장,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을 3회에 걸쳐 보여 드립니다. 》

‘아줌마’인 김숙재 씨(47)는 매일 수십 개의 도시락을 싼다.

매일 오전 그의 분주한 손놀림에 따라 오이무침, 우엉조림 등 갖가지 반찬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도시락에 소복하게 담긴 따끈한 쌀밥…. 방학 동안 끼니를 챙기기 힘든 소년소녀 가장들의 점심식사다.

그는 서울 강서구 등촌자활후견기관에서 결식아동들의 도시락을 만드는 일을 하고 하루 일당 2만6000원을 받는다. 김 씨는 씩씩하다. 그에게선 느닷없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절망에 몸부림쳤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16년 전 김 씨는 남편의 빈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들(당시 10세) 딸(당시 6세)을 데리고 친정으로 거처를 옮긴 뒤 6개월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넋을 놓고 있던 어느 날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아이들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렵사리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앞에 5평 남짓한 가게를 얻어 라면장사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아들이 고3이 될 때까지 9년 동안 매일 땀 흘리며 일했지만, 외환위기는 조그만 라면가게도 문을 닫게 만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남매의 격려에 다시 힘을 얻었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던 김 씨는 등촌자활후견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뒤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단지 생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도시락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식들을 버리는 엄마,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이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마음먹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 사회 곳곳에 아줌마의 힘이 필요한 곳이 생각보다 많답니다. 일단 뛰어들어야 탈출구가 보여요. 쉽게 좌절하지 말았으면 해요.”

김 씨의 아들은 현재 공군장교로 파일럿 교육을 받고 있고, 대학교 3학년생인 딸은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동료직원 최은숙 씨는 “김 씨는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며 “억척스럽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힘이 그의 최대 무기”라고 말했다.

김 씨뿐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억척 아줌마’를 찾아볼 수 있다. 아줌마는 ‘촌스럽고 극성맞은 유부녀’가 아니라 저 바닥에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숨은 동력이다. 취재팀이 만난 수많은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하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2002년 이혼 후 1년여를 실의에 빠져 지내다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간병인 교육을 받고 지난해 10월부터 적십자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홍희 씨(47).

이 씨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다 보니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며 “고되기도 하고 금전적으로 많은 보수를 받는 일도 아니지만 마음의 재산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옷가게 ‘에덴’의 주인 박모 씨(44)는 스스로를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 대신 정수기, 보험 등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점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발로 뛴 끝에 8개월 전 남대문시장에 가게를 마련한 박 씨는 하루에 고작 3∼4시간밖에 못 자지만 이렇게 한발씩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날을 맞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몸 건강하고 자신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죠.”(애완견 옷을 만드는 박병수 씨·44·경기 안산시 원곡동)

“어렵거나 더러운 일을 꺼리고 피하는 것보다 일단 부닥쳐 봐야 자신만의 기술도 생기고 수익도 따라오게 돼요.”(세탁일을 하는 이영인 씨·50·서울 마포구 성산동)

오늘도 우리 시대의 아줌마들은 내일을 향해 부지런히 발을 움직인다.

가톨릭대 김경자(金庚子·소비자주거학) 교수는 “아줌마에게는 생산성과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실천력이 있다”며 “그들은 가족과 가족이 속한 사회에 필요한 일을 겁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여성가장 지원 프로그램▼

“포기하지 마세요.”

경기불황으로 인한 남편의 조기퇴직과 이혼, 사별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여성 가장’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30대 여성 취업자는 220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2.3% 늘어났고 40대 여성은 252만 명으로 3%나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30대 남성 취업자는 1.4% 감소했다. 40대 남성 취업자는 2003년에 비해 2.1%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여성 가장들을 교육,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 사회복지기관들도 많아졌다.

서울 관악자활후견기관에는 현재 아줌마 70여 명이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봉재 장애아도우미 가정관리사 간병 등의 코스가 있으며 이와 별도로 인성교육을 함께 실시한다.

교육 이수자들은 자활 훈련을 거쳐 일반 업체에 취업을 하거나 이수생들끼리 모여 공동창업을 하기도 한다. 2003년 구로자활후견기관에서 태동한 청소대행업체 ‘깔끄미’가 성공 사례.

대한어머니회는 40∼60대 초반 여성을 대상으로 산모도우미와 가사도우미 양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 단체의 함현주 사무국장은 “교육을 처음 시작한 1994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참가자가 크게 늘었다”며 “아줌마들이 평소 갖고 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서울 강남구 도곡1동 강남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여성 가장·실업자 프로그램’으로 양식조리사 자격증 취득준비반(5월 23일∼7월 23일)을, 강북구 수유동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약국전산경리실무과정(2월 16일∼5월 15일)과 제과제빵자격증 과정(3월 3일∼6월 2일) 등을 운영한다.

여성인력개발 센터 교육 프로그램
기관개강일교육내용
서울관약여성인력개발센터2월 14일모니터요원 양성
서울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2월 16일컴퓨터강사 양성
2월 21일학교 특활강사 양성
서울노원여성인력개발센터3월 22일꽃집 창업
서울금천여성인력개발센터2월 22일반찬가게 창업
경기시흥여성인력개발센터3월 3일포장마차 창업
자료:여성부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인턴기자인 이지연(서울대 정치학과 3년) 전태종(서강대 신문방송학과 3년) 조영중 씨(서울대 영문학과 3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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