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너희가 미래를 아느냐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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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의 영혼에 각인된 본능 같은 것이다.

저명한 공상과학소설(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처럼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미래다.

연말연시만 되면 국내외 각종 기관에서 새해에 대한 예측을 내놓는다.

새해 운세를 점치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고대의 점성술에서 현대적인 컨설팅까지 수많은 종류의 미래 예측이 이런 불안의 틈새를 파고든다.

예측에 대한 견해는 극명하게 갈린다.

미래에 대한 예측 없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미래 예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기꾼 취급하며‘차라리 동전을 던져서 미래를 점치라’는 독설도 있다.

2005년 새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둘러보면 지금 당신의 주변엔 수많은 예측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 2004년 예측을 검증해 보니…

달력을 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지난해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8%에서 5.3%로 0.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5.2%), 금융연구원(5.8%), 산업연구원(5.5%), LG경제연구원(5.1%)도 다들 5%가 넘는 성장률을 점쳤다. 프랑스계 증권회사인 크레디 리요네는 무려 7.4%라는 수치를 내놓기도 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올해 한국 경제는 내내 휘청거렸다.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국가의 절반 수준인 4.7% 선. 대부분 기관의 예측이 빗나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지난해 하반기 정부를 중심으로 경기가 3분기(7∼9월)에 저점을 지났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가 조만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져 국내 경제도 5%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던 것이다.

연말연시엔 역술인들도 경쟁적으로 새해 전망을 내놓는다. 지난해 언론에 소개된 몇몇 역술인은 한나라당이 4월 총선 이전에 분당한다는 것과 경제적으로는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경기가 되살아난다는 것을 점쳤다.

한때 세간에 화제가 됐던 예언서 ‘송하비결’에는 2004년에 미국 대통령이 피격되고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는 대목이 들어있다. 그러나 대선에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했고 지금까지 건재하다.

언론의 예측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대전제하에 ‘2004년 10대 예언’을 발표했는데 이중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거나 잡힌다는 게 포함됐다.

영국 BBC방송은 가톨릭교회에서 근대 이후 최초의 흑인 교황이 탄생한다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또 찰스 영국 왕세자는 오랜 연인 카멜라 파커 불스와 드디어 웨딩마치를 울리고, 휴대전화 화면과 TV가 결합한 형태의 한 손에 잡히는 초소형 컬러TV가 선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예측은 모두 실현되지 않았다.

○ 통계냐? 직관이냐?

예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방법을 단순화하면 관련 있는 데이터를 조사해 현재의 추세가 이어질지 어떨지를 분석하는 게 전부다. 토정비결 같은 역학도 엄밀히 말하자면 과거의 통계를 토대로 미래를 점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 예측 모델은 과거의 경제 통계가 보여준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향후 전망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사이클이 꺾이는 시점에서의 예측이나 인구 증가처럼 관성이 없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대한 예측은 틀릴 수밖에 없다.

날씨 같은 카오스적인 현상이나 주식시장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수많은 요소로 이뤄진 복잡계(CAS·Complex Adaptive System)에 대한 예측 역시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매일 수천만 명의 한국인이 서로 영향을 주며 벌이는 다양한 거래 행위의 거대하고 복잡한 혼합 상태를 의미한다. 결코 간단치 않다.

세계미래협회 한국대표로 최근 ‘미래예측 리포트’를 펴낸 호주대사관 박영숙 공보실장은 “경제연구소에서 내놓는 예측은 왜 늘 틀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 외적인 것이지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통계 수치만 집어넣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인구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처럼 중요한 요소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현실감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창욱 수석연구원은 “정확한 예측치를 내놓기 위해 정부 정책의 영향을 분석해 반영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선 정부나 정치권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올해만 해도 대통령 탄핵과 총선에 대한 후폭풍,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성매매특별법 시행 등 굵직한 사안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변화가 클수록 기업은 몸을 움츠리기 때문에 경제에는 악영향을 준다.

경제는 또 ‘심리 게임’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의 말 한 마디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1년 전에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해 정교한 예측을 내놓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차라리 경제 예측을 하지 말자는 극단론도 나온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예측은 거의 쓸모가 없을뿐더러 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정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틀린 예측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장기 정책을 수립하는 예가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를 아는 정확한 지름길

아무리 복잡한 모델도 복잡한 전체를 정확히 그려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를 동원한 예측조차 결국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연구소들은 경제예측 모델에 환율 고용 소비 투자 등 수백 가지 변동요인의 추세를 넣고 전망치를 산출해낸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뽑아낸 전망치가 반드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모델을 돌려 수치가 나오면 연구원 내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토론을 벌여 수치를 조정하는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경제연구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컴퓨터로 돌리는 논리적인 모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술 예측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델파이’ 기법은 ‘신탁(神託)’을 뜻하는 이름처럼 아예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묻는 게 전부다.

그렇다면 예측은 언제나 틀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공학과 정재승 교수는 “미래는 굉장히 많은 효과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단기 예측은 가능해도 장기 예측은 무조건 틀린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냐 단기냐는 예측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일기예보는 짧게는 반나절, 길어야 3일 정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기간이다.

예측 수준도 중요하다. 바둑 고수들은 몇 수만 둬도 승패 자체는 예측할 수 있지만 게임이 끝난 후 바둑판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예측 무용론을 내놓는 것은 성급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펴낸 ‘2005 세계대전망’의 편집인인 다니엘 프랭클린 씨는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의 ‘가능성’을 서술하거나 또는 ‘새로운 경향’을 이야기한 것을 두고 맞았다, 틀렸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틀리더라도) 그 시점에선 맞는 분석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가. 박영숙 실장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현재를 정확히 아는 지름길”이라고 대답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한치앞 못 본 ‘코미디’ 예측 예측들…▼

복잡계 이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존 홀런드 교수는 “장기 예측은 프로메테우스적인 성향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에 불을 가져다주기도 했던 그의 운명은 가혹했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평생 독수리에게 심장을 파 먹히고 다시 재생되는 벌을 받게 된다.

예측의 운명 역시 프로메테우스처럼 불행해지기 쉽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잘못된 예측은 자책과 비난에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려는 인간의 욕구는 어느새 다시 살아서 꿈틀거린다.

1877년 당시 미국 최대의 전신회사였던 웨스턴 유니언은 전화기에 대한 그레이엄 벨의 특허를 10만 달러에 사라는 제의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대중은 아직 전문적인 통신기기를 이용할 단계가 아니다. 벨의 발명품과 관련해 어떤 투자도 해서는 안 된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존 레일리 경은 1896년 “열기구를 제외하면 하늘을 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를 전혀 안 믿는다”고 말했다. 1903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하늘을 나는 기계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불과 2개월 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작은 마을 키티 호크에서 최초의 비행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1959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회장이었던 리처드 울리 경은 “우주여행이란 말은 허튼 농담에 불과하다”고 내뱉었다. 닐 암스트롱을 비롯한 미국의 우주인들이 달을 밟은 것은 불과 10년 뒤인 1969년이었다.

미국의 미래학자로 허드슨연구소를 설립했던 허먼 칸 박사는 1967년 “2000년이 되면 컴퓨터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미학적인, 가장 인간다운 능력에 필적하는 능력을 갖게 되거나 뛰어넘게 될 것이며 인간이 못 가진 수많은 종류의 다른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2000년대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컴퓨터라고 믿고 있다.

컴퓨터업계의 거물들조차 PC의 폭발적 성장은 내다보지 못했다.

IBM의 토머스 잡슨 회장은 1943년 “내 생각에 세계적으로 5대의 컴퓨터를 수용할 만한 시장은 있다”고 말했다. DEC의 켄 올슨 회장은 1977년 “도대체 누가 가정에서 컴퓨터를 갖고 싶어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1929년 주가 대폭락이 시작된 다음날 미국 하버드 이코노믹 소사이어티가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는 “심각한 불황이 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래서 “경제예측가로 성공하는 방법은 되도록 많이 예측을 내되 성적표는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주가 예측 역시 몹시 어렵다. 다음은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10월은 증권에 손을 대기에 가장 위험한 달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밖에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도 위험하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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