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캐스터 이익선 “배 내밀고 하는 방송도 의미있죠”

  • 입력 2004년 11월 29일 20시 00분


김미옥기자
김미옥기자
밭 매다 아기 낳았다는 이야기는 ‘조선 여인 잔혹사’가 아니다. 직장에서 부른 배를 내밀고 일하다 배가 아파 아이 낳으러 간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TV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적 영역’을 다뤄야 하는 매체에서 ‘사적으로’ 임신한 여자가 뉴스를 전한다면 아직도 이맛살을 찌푸릴 어르신이 많을 터.

임신 8개월에 ‘KBS 뉴스 930’의 기상캐스터를 맡고 있는 이익선씨(37)에게서 어려움과 보람을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나.

“처음에는 카메라가 배를 잡지 않도록 애썼어요. 그러나 기상도를 손으로 짚어야 하기 때문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불룩한 배가 드러나는데 이젠 뉴스제작팀 관계자들도 이해하는 눈치입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직장에서 ‘경력관리’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임신을 하게 되는데….

“두 시간짜리 ‘뉴스광장’에서 기상캐스터를 14년5개월 맡았습니다. 그동안 매일 오전 4시반에 일어나 출근했어요. 현재 프리랜서로서 신분이 불안한 저로서는 ‘뉴스광장’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러나 아이와 일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 생각했고, 두 가지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부 대상 뉴스인 지금의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여성들이 기를 쓰고 임신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한 결과인데….

“TV에 나오는 여성들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일에 열정이 많은 여성일수록 임신 중 더욱 열심히 일하지요. 그러다가 본인이나 아이의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아무리 일이 좋아도 임신부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 일을 많이 줄였고요.”

―‘임신 중 TV 출연’의 보람은….

“임신 중 TV에 나오지 않다가 출산 후 산뜻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배 내밀고 방송하는 것도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출산율 저하 운운하면서도 취업 여성의 임신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사회 분위기 개선에 도움이 되고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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