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배우-배역 ‘잘못된 만남’

  • 입력 2004년 9월 30일 18시 42분


SBS 드라마 ‘장길산’의 한고은. 그는 내면연기가 미흡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제공 SBS
SBS 드라마 ‘장길산’의 한고은. 그는 내면연기가 미흡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제공 SBS
SBS 드라마 ‘장길산’의 한고은(묘옥), MBC ‘아일랜드’의 김민준(이재복), MBC ‘영웅시대’의 차인표(천태산).

각각 드라마의 주연이지만, 배역과 배우의 연기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양대 최형인 교수(연극영화과)는 “이들의 연기를 보면 즐겁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어색한 연기가 드라마의 흐름을 끊는다”는 네티즌 지적도 있다. 방송계에선 이를 두고 배우와 배역의 ‘잘못된 만남’이라는 말도 나온다.

● 무리한 이미지 변신

한고은은 ‘장길산’에서 사당패 창기 출신이자 장길산의 첫사랑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고은의 이미지가 도회적이고 현대적이어서 사극을 소화하는 내면 연기가 미흡하다는 평을 듣는다.


SBS의 한 PD는 “한고은이 분위기나 패션으로 현대극은 잘 소화하지만, 영어 발음이 섞인 발성 때문에 사극 연기는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한고은은 이 사극에서 손톱을 기른 채 나와 시청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차인표가 ‘영웅시대’에서 맡은 천태산은 기업인의 굴곡 많은 인생과 섬세한 사랑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캐릭터. 그러나 차인표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기학을 전공하는 한 교수는 “차인표는 강한 캐릭터는 소화할 수 있으나 발성에 문제가 있어 중간 톤의 연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MBC ‘다모’에서 무게감 있는 역할을 보여준 김민준은 ‘아일랜드’에서 삼류 건달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나 아직 멀었다는 평을 듣는다. KBS의 한 PD는 “김민준이 변신을 너무 빨리 시도한 듯하다”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몇 번 더 거친 뒤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연기력보다 인지도

드라마 캐스팅에서 ‘잘못된 만남’의 이유는 뭘까. 연기력과 인지도를 고루 갖춘 연기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PD들은 이 같은 현실에서 시청률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스타급 연기자들의 ‘인지도’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MBC 박종 제작이사는 “연기력은 떨어져도 인지도가 높은 미남미녀 연기자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얄미운 신데렐라가 예쁘니까 용서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김종학프로덕션의 박창식 제작이사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제작에 들어가는 드라마 중 그때쯤 군입대하겠다고 밝힌 원빈이 남자 주연 후보에 올라있지 않은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캐스팅이 편중돼 있다”고 말했다.

PD들은 이전에 얼굴 마담 격이었던 주연들에게 연기력을 요구하는 캐릭터가 늘어나면서 캐스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KBS 김종식 드라마 2팀장은 “최근 주연 캐릭터들이 복잡해지고 있지만 인지도 높은 배우 중 이를 소화해 드라마 전체를 이끌고 갈 연기력을 갖춘 이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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