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인철/中역사학자들의 3가지 오류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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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이들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중국사를 설명하는 논리가 ‘통일다민족국가론’이다. 이 이론에 의해 과거에 역사를 달리했던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설명하고 고구려사도 중국사라는 논리를 성립시키고 있다. 고구려는 한족이 아닌 예맥(濊貊)족이 세운 나라이지만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을 구성하고 있거나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 있던 모든 민족의 역사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국학자들이 만능 무기로 활용하는 이 통일다민족국가론에는 3가지 착오가 있다.

▼인간-과거-공간 무시한 주장▼

첫째, 주체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그것이 민족이든 계급이든 국가든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고 역사학은 인간이 과거에 행한 행위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그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라고 하는 논리로, 땅을 기준으로 역사를 설명한다. 지금 중국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주체를 인간이 아니라 땅으로 잘못 인식하는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라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민족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국사의 경우에도 만주족의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기 전에 만주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고, 만주족도 중국인의 일부가 아니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가 변화하는 것임에도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에 시간을 고정시켜 놓고 그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시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고구려사의 경우 현재 중국 영토를 전제로 하면 평양 천도 이전, 즉 만주지역의 고구려사만 중국사이므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중국사에 포함시키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한사군이 설치된 기원전 107년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이는 통일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다. 역사 시점을 기원전 107년으로 하면 현재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대부분이 중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공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영역을 기준으로 중국사를 설명함으로써 과거 중국 영토가 아니던 곳을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원에서 출발해 점차 영토를 확장해 온 중국의 역사 발전 과정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체중 150kg의 뚱보가 자기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컸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설명하다보니 중국과 주변국의 전쟁을 모두 내전이나 통일전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고조선과 한(漢), 고구려와 수(隋) 당(唐)의 전쟁은 국제 전쟁이지 중국의 내전이나 통일전쟁이 아니었다.

통일다민족국가론은 이처럼 역사학의 기본마저 잘못 인식하게 하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이미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중국의 역사 재구성 작업에 대해서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비판론이 제기된다. 최근 상하이의 문화평론가 주다커(朱大可)는 중국이 고대사 단대공정(斷代工程·시대 구분 작업)에 2000여명의 전문가를 동원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단대공정은 미리 설정된 한족 중심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역대 사관들이 황제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냈던 것의 새 옷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역사는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그 비판은 통일다민족국가론에도 적용된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해 중국사로 설명한다는 ‘미리 설정된 목표’에 부응하기 위한 억지 논리라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중국학자들은 이제 그만 이를 폐기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역사학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이인철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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