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가치는 얼마나]“갈라설 땐 재산도 반반으로”

  • 입력 2004년 8월 9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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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하고 자녀를 돌보는 가사노동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혼 시 재산의 절반에 대해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한 민법개정안의 추진을 계기로 여성의 재산형성 기여도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90년 도입된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에는 재산분할비율에 관한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았지만 개정안은 혼인 중 부부의 노동을 동일한 가치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에만 전념한 전업주부라도 남편이 소득을 위해 직장에서 일한 것과 똑같이 재산형성에 기여했다는 얘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등은 이 같은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여야의 여성의원들이 입법공조를 통해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발 벗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

“남편의 부정행위와 폭행 때문에 고민 끝에 결혼생활 15년 만에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이혼에 동의한 남편에게 집을 팔아 나눠 달라고 하니까 한 푼도 못준다고 합니다. 자기 명의로 돼 있고 그 동안 살림만 한 주제에 무슨 재산을 달라느냐는 것입니다. 결혼 당시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해 남편의 박봉으로 생활하면서 집을 마련하느라 저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재산을 나눠 가질 수 없나요?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상담사례 중 하나. 이 상담소에는 이혼 후 재산분할 문제로 고민하는 상담이 하루에도 수십건에 이른다. 조경애 상담위원은 “이혼시 재산분할비율이 법관의 재량에 맡겨져 주부들의 가사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례상 가사노동의 가치는 30%가량 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이혼시 아내에게 분할되는 재산은 부부의 재산에서 아내의 기여분의 정도”라며 “그러나 남편의 부정행위나 폭행에 대해 청구하는 위자료와 합쳐도 여성이 이혼시 차지하게 되는 액수는 전체 재산의 50%에 훨씬 못 미친다”고 말했다.

○주부의 가사노동가치는

통계청이 5년마다 작성하는 ‘1999년 국민생활시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한국 주부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6시간35분이었다. 자녀 돌보기로 인해 20대와 30대의 가사노동시간이 가장 길었고 40대에서는 음식준비시간 사용이 두드러졌다. 60대도 하루 평균 5시간1분을 가사노동에 쓰고 있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 박사가 이 같은 조사결과를 적용해 2001년 여성의 가사노동가치를 산출한 결과 대졸 여성의 기회비용은 198만원으로 나타났다. 고졸 여성의 기회비용은 90만8000원이었다. 기회비용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가정주부가 가사노동을 포기하고 직업노동에 참여할 경우에 벌어들일 수 있는 잠재적인 소득을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본 것이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경우인 대체비용법으로 가사노동의 시장가치를 계산한 결과는 85만7000원이었다.

양세정 상명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기회비용법으로 가사노동가치를 평가했을 경우 교육수준이 높은 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가 높게 책정되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며 “현실적으로 주부의 교육수준이 높다고 해서 교육수준이 낮은 주부보다 가사노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체비용법으로 평가했을 경우 가사노동가치가 과소평가되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주부에 의해 행해지는 가사노동은 헌신과 애정이 스며들어 있어 가사도우미의 노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은 세계적 추이

가사노동가치를 얼마로 계산하든 민법개정안은 주부의 가사노동가치와 남편의 직장노동가치를 같다고 본다.

이러한 기본전제에 대해 남성의 반발이 있지만 외국의 입법례 역시 동등 노동에 대해 동일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이혼할 때 혼인 중에 취득한 재산에 대해 명의에 관계없이 부부쌍방에게 동일한 지분을 인정하는 판결이 대부분이다.

독일에서는 이혼할 때 부부의 모든 재산을 더한 뒤 결혼할 때 각자 가지고 있던 재산을 빼서 얼마나 재산이 늘었는지 계산해 반을 나눈다. 혼인기간 증가된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배우자가 소득을 창출했건, 가사노동에 전념했건 상관없이 상호협력 상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김상용 부산대 법대교수는 “부부가 혼인기간 중에 주택을 매입해 남편의 명의로 등기를 한 경우에도 그 주택은 부부 공동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재산으로 보아야 하므로 이혼시 아내는 그 주택의 절반에 대해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홍 박사도 “부부가 일정기간 맞벌이를 한 경우 부부간 소득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아내가 소득차이만큼 가사노동을 수행한 것으로 간주해 2분의 1의 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이혼관련법 개선안▼

“여야의원들이 이혼시 혼인생활 중 취득한 재산을 절반씩 분할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과 아이를 맡지 않는 쪽 부모가 양육비 전액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에는 대체로 공감합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그러나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기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등한시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행 양육비 지급과 부부재산제의 쟁점과 개선안의 내용은 무엇인지 문답형식으로 알아본다.

―현행 부부별산제를 고친다고 하는데….

“별산제란 명의를 가진 사람이 소유권자이고 명의가 없는 사람은 재산권이 없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취득한 재산에 대해 명의 없는 배우자는 권한이 없어 명의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따라서 명의자가 이혼 전 재산을 빼돌려도 막을 길이 없다. 혼인생활이 유지될 때는 별산제를 하되 이혼시에는 부부재산공유제를 적용해 재산을 분할하자는 것이다.”

―이미 이혼시 재산분할청구제와 공동명의제가 있는데….

“재산분할비율에 관한 기준이 없어 개정안에서 절반씩 재산을 균등분할토록 했다. 또 공동명의는 의무가 아니므로 강제하지 못한다. 개정안에서는 혼인 중에도 집을 파는 등 중대한 재산의 처분시 상대방의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양육비채권 이행 확보에 대한 법률안의 내용은.

“양육비 지급 문제가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져 양육비 지급이행 비율이 낮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 양육비 지급의무자에게 재산이 있다면 담보제공을 법원에서 강제하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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