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삶의 무게 빠진 액션… ‘바람의 파이터’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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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파이터'-사진제공 무비&아이
'바람의 파이터'-사진제공 무비&아이
방학기의 탁월한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라고 하면 얼핏 이런 수식어가 떠오를 듯하다. 어두운, 무거운, 자기 파괴적인, 고뇌 섞인, 아픈, 두려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하지만 불행히도,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이런 묵직한 단어들을 휘발시켜 버린다. 익숙한 무협활극의 문법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러브 로망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아 버린다.

일제강점기. 소년 최배달은 머슴 범수에게서 태껸을 배우며 파이터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연루된 범수가 자취를 감추자 배달은 비행사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밀항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센진’이라는 차별. 그는 범수를 기적같이 다시 만나 수련을 계속하지만 범수가 야쿠자의 손에 죽자 입산수련을 결심한다. 뼈가 으스러지는 자기 연마를 마친 그는 일본 각지를 떠돌며 무술 고수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이른바 ‘도장 깨기’를 시작한다.

최배달(1922∼1994)은 한국 전통무술 태껸을 토대로 ‘극진공수도’라는 실전 무술을 창안한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의 실제 삶’이라는 핵심 재료를 십분 살려 요리하지 못한다. 대신 ‘업신여김에 치를 떨다가→사부의 죽음을 목격한 뒤→복수의 칼날을 갈아→복수에 성공하지만→다시 내면 갈등을 겪으면서→결국 전설이 된다’는 여느 무협 액션영화의 손쉬운 코스메뉴를 택한다. 이 영화는 최배달의 액션에서 스타일을 뽑아내려 하기 전에 그의 삶이 갖는 진정성에 더 정직하고 깊숙하게 발을 담갔어야 했다. 최배달과 일본 게이샤 요우코의 사랑도 삶의 무게감과는 먼 ‘나 잡아 봐라’ 수준의 첫사랑 이야기로 흘러버림으로써 오히려 최배달의 인물됨과 정면충돌해 버린다.

양동근의 액션은 육중하다. 파괴적이다. 그는 와어어 등 특수효과나 대역에 의존하지 않고 상대의 관자놀이를 뒤꿈치로 으스러질 듯 타격하는 리얼리티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칙칙한 것과 무거운 것을 구분해 주었더라면 한결 더 좋았을 것이다.

최배달의 동료 춘배 역의 정태우는 수다와 허풍 속에 따뜻한 마음을 감춘 연기로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해냈지만, 영화를 자기의 일부로 만들려 하기보다 자신을 영화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 향후 과제를 안게 됐다. 스승 범수 역의 정두홍은 전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이어 이번에도 대사를 할 때마다 심각하던 극중 분위기가 뜬금없이 가벼워져 버리는 현상에 대해 고민해 볼 시기가 됐다. 그의 살기 어린 눈매에 비해 주어지는 대사(“힘없는 정의는 무능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지요” 같은)는 터무니없이 순진하다.

이 영화 제작과정엔 곡절도 많았다. 제작사가 바뀌는가 하면, 당초 남녀 주인공으로 선정됐던 가수 비와 유민 대신 양동근과 ‘워터보이즈’의 일본 여배우 히라야마 아야가 주연을 맡았다. ‘화이트 발렌타인’ ‘리베라 메’의 양윤호 감독 연출.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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