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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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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은 수백년 동안 동일한 ‘표준 레퍼토리’의 반복재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쇤베르크 이후의 ‘모더니즘’ 음악은 의미 있는 수의 고정 팬과 표준 레퍼토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음악과 라틴 음악이 갖는 풍부한 가능성은 대중음악계에서 충분히 발굴돼 왔다. 따라서 ‘이제 아시아 음악에 눈을 돌릴 때’라는 요요마의 판단은 맞는다. 그가 자신의 연고지인 중국의 음악을 넘어 ‘실크로드’ 라는 연합전선을 구성한 것 또한 영리한 전략이다.
이날 연주된 김지영 작곡 ‘밀회’는 가야금 병창, 전래의 피리를 상징한 오보에, 아쟁을 형상화한 첼로가 엮어내는 ‘똑 떨어지는’ 단아한 작품이었다. 단 공연장 음향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연주자의 앞에 음향 증폭용 스피커가 있었지만 가야금과 창의 증폭음은 장내 벽면의 별도 스피커에서 울려나왔다. 엉뚱한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때문에 눈을 감고 들으면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음향이었다.
전체적으로 ‘밀회’를 제외하고는 ‘실크로드 프로젝트’팀이 각 지역 작곡가들에게 새롭게 창작 의뢰한 작품보다 대중 속에서 사랑받아 온 전래의 민속음악들이 한층 큰 호응과 갈채를 받았다. 중국과 아제르바이잔의 창작 음악가들은 민족음악이 가진 소재만 가져와 이용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민족음악이 갖는 고유의 ‘신명’ 또는 ‘민중적 생명력’을 취하는 데서 활로를 찾았어야 했다.
중국 작곡가 지아다춘의 ‘채색된 사막의 풍경’, 아제르바이잔 작곡가 알리자데의 ‘무감 사자히’는 훌륭한 소재를 갖고서도 모더니즘의 한계로 지적돼 온 음높이나 길이 등 음소재의 인위적 분할, 그리고 과도한 설계의 폐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민족음악이 가진 ‘신명’이란 미덕은 대부분 탈색돼 아쉬움을 남겼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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