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새 문화코드로 뜨는 이유?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31분


10대가 한국 문화계의 전복(顚覆)적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더 이상 문화계 주변부에 머물던 그들이 아니다. 과거 10대는 하위문화의 하나인 하이틴문화의 주역이거나 성인문화 속에 등장하더라도 어른들의 불안을 드러내는 징후로만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10대 자신이 당당한 주체로 그려지고 있다.

● 허물어지는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포착되는 곳은 영화계다. 1990년대 중반이후 여고생들은 ‘여고괴담’과 ‘거짓말’ 등에서 불가해한 ‘괴물’로 묘사됐다. 이들은 사회의 불안과 성인의 왜곡된 욕망의 투영체로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영화에서는 이들 미성년이 성인과 동등한 욕망의 주체로 등장한다.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는 올 상반기에만 ‘어린 신부’, ‘내 사랑 싸가지’, ‘사마리아’ 등 세 편이다. 하반기에는 인터넷 십대작가 귀여니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이 개봉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한국영화 속 10대들은 이제 더 이상 남성 판타지 안에서 예쁘고 착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랑하고 삶을 즐기는 주체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이들 영화가 단순한 하이틴 영화가 아니란 점은 여고생이 신부로 등장하는 ‘어린 신부’가 전국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TV드라마와 만화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남자교사와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사랑해 당신을’(1999년), 여교사와 남고생의 사랑을 다룬 ‘로망스’(2002년)에 이어 올해 방영된 ‘낭랑18세’에서도 여고생이 당당히 성인 남성의 사랑을 쟁취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만화 ‘순정만화’는 원조교제라는 주위의 의심 어린 눈초리에도 꿋꿋이 사랑을 지켜가는 20대 후반의 직장남성과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기를 끌었다.

대중문화에만 이런 10대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에서도 여고생을 작품소재로 등장시키는 파격이 시도됐다. 4월말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오형근씨의 사진전 ‘소녀연기’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은 더 이상 순진하지도 귀엽지도 않다. 교복 속에서 강렬한 시선을 내뿜는 그들은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주체다.

●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

계간 ‘문학과 사회’ 여름호는 ‘미성년’을 특집주제로 다루며, 미성년을 ‘지식이 부족한 존재’ ‘욕망의 과잉체’로 해석하는 것은 근대적 사고방식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한국사회 속의 미성년의 정치학’이란 글을 기고한 문화평론가 정준영씨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과 큰 차이 없는 이들의 권리를 현대에까지 억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한다.

“미성년자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며 경제적으로도 의존적인 존재로 남아있도록 강요되지만 하위 서비스직처럼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한 부분에는 적극적으로 동원된다.”

이런 현실에서 10대 문제는 더 이상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소설속의 미성년’을 분석한 문학평론가 이수형씨는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은 문명이 원하는 순수함을 위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정이현씨의 소설 ‘소녀시대’(2003년)에서 열여섯 살 여주인공이 대학교수 아버지의 아이를 밴 여대생의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에 나서면서 냉소적으로 되묻는 것처럼, 그들은 이제 ‘비밀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녀만 없어지면 우리 집이 안 망가지나?”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사회에선 여전히 비주류이지만 문화계에선 주류적 코드로 떠오르고 있는 10대의 위상을 드러내준 영화 ‘어린 신부’(왼쪽)와 드라마 ‘낭랑18세’. 이들 작품 속에서 10대는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 등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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