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한태숙/진시황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 입력 2004년 5월 7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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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에 소개된 병마용의 발굴 사진을 우연히 봤다. 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한 수천개의 토용이 늘어서 있는 그 스케일에 압도됐고 진시황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무덤 안에다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나 궁금했다. 만리장성과 분서갱유로 유명한 진시황이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지하궁전에 대한 신비감이 더욱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과연 불사(不死)를 꿈꾸며 영원히 살기 위해 현세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해 놓은 것일까.

70만명의 죄수들을 동원해 태산을 만들 만큼 많은 흙을 파내고 그 안에 불가사의한 세상을 만든 진시황 이야기는 중국에서 수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또 소설과 역사책에 등장하고 있다. 진시황은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은 폭군으로, 신비한 몽상가로, 또는 치세에 뛰어난 전설적인 왕으로 그려진다.

연극 ‘서안화차(西安火車)’ 앙코르 공연을 앞두고 최근 배우들과 함께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이 있는 중국 시안(西安)에 다녀왔다. 지난해 초연됐던 이 작품은 동아연극상(작품상 연출상 미술상 연기상)을 비롯해 9개의 연극상을 받는 과분한 평가에 힘입어 13일부터 다시 공연하게 됐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진시황은 아니지만, 진시황처럼 죽음 이후까지 자신을 지켜주는 인형을 만들어 놓고 싶어 하는 남자의 얘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대상을 잊을 수 없어 그의 주검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도록 토용으로 만들어 놓고 남자는 시안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시안 시내 곳곳에 커다란 빌딩들이 치솟고 있었고 넉넉한 살림을 자랑하는 듯 새로 만든 넓은 길이 수없이 뻗어 있었다. 한 인간의 집착이 거대한 유물을 남겼고, 또 그 조상 덕에 후세가 관광수입을 올리며 잘살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진시황 유물 사진에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의 동기를 마련했으니 나도 진시황에게 빚을 진 셈이다.

시안 어디에서나 땅을 깊이 파면 유물이 쏟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 하는 입장에서는 유물이 귀찮은 물건일 뿐이라고 한다. 유물이 출토되면 당국의 조치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건축과정 전반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고도 경주가 떠올랐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기는 경주도 마찬가지다. 유적도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조화가 잘 이뤄져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연극에서처럼 기차를 탄 것이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간 것이지만 공연을 앞둔 배우와 스태프가 공연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가는 느낌은 특별했다. 시대도, 국적도 다른 이 이국인과 우리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마용갱 내부로 들어갔을 때 첫인상은 수천명의 엑스트라가 도열한 초대형 무대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토용으로 분한 배우들이 스톱모션으로 서 있다가 금방이라도 실감나게 전투장면을 연기할 것 같았다.

‘서안화차’에서 진인으로 나오는 배우 최일화와 중국인으로 분한 지영란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이들은 연극에서처럼 수많은 토용 사이사이에 서서 인간의 인연에 대해 이런 대사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룻배와 같고 또 어떤 사람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 전복시키기도 한다.”

한태숙 연출가·극단 ‘물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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