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4월 20일 18시 2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고요한 대숲에 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보고 휘파람 부니….”
이어 조일하 명창(중요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이 소리를 받자 개울을 쳐다보고 있던 황숙경 명창(〃)이 이에 질세라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노래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이날 모인 사람들은 6월17∼2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되는 정가극 (正歌劇) ‘황진이’의 출연진과 연출가 김석만씨(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교수) 등 제작진 20여명. 이들은 정가(正歌)를 극화하는 실험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정가란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를 통칭하는 용어로 조선 선비들의 성악예술을 뜻한다. 판소리나 민요, 잡가와 달리 상류층에서 사랑받아온 정가는 서민들의 노래보다 정적이며 아정(雅正)한 풍류가 있다.
어린 시절, 기생 시절 등 시기별로 황진이 역을 맡은 이준아 조일하 황숙경 이선경씨, 전설적인 명창 이언방 역의 박문규씨(중요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 이사종 역의 김광섭씨(〃) 등은 소쇄원을 둘러본 뒤 인근의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아 조선조 선비들의 풍취를 눈과 귀 등 오감으로 확인했다.
“양산보가 소쇄원을 조성한 시기는 송순(宋純·1493∼1583), 정철(鄭澈·1536∼1593) 등 가사문학의 대가들이 활동한 시기여서 이 분들도 이 곳을 즐겨 찾았죠. 송순과 정철의 체취는 그들이 머물렀던 제월당(霽月堂) 애양단(愛陽壇) 등 경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김석만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연기자와 제작진들이 이곳에 와서 옛 선비들의 체취를 직접 느껴보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답사기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황진이’ 제작진과 출연진은 선비의 풍류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달 초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부터 한시특강을 듣기도 했다.
이준아 명창은 “소쇄원에 와보니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이해해온 송순 정철 등의 시가문학을 바로 그 시대에 산 듯이 피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석만 교수는 “판소리의 경우 연극적 요소가 많은 데 반해, 이번에 처음 시도하는 ‘정가극’은 모체가 되는 노래가 매우 정적(靜的)이어서 연극적으로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무대도 일반적인 서양식 액자 무대(프로시니엄)를 탈피하고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밀 생각이다.
제작 실무를 총괄한 김태균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장은 “이번 공연은 그동안 서양 연극기법이 왜곡시킨 전통극적 요소를 다채롭게 살려보는 무대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담양=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