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감성 크로키]아름다운 '모짱'

  • 입력 2004년 1월 29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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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과 노바다야키를 합친 ‘레스토야키(restoyaki)’라는 개념을 내건 음식점에서 옛 친구들과 만났다. 고교, 대학시절

친구들이다.

그곳의 인기 메뉴는 ‘울트라 벤토’다. 교실 한가운데 난로에 올려 데워 먹던 추억의 네모난 구릿빛 양철 도시락. 뚜껑을 여니 흰 쌀밥 2분의 1, 김치 볶음과 동그란 계란 프라이가 4분의 1씩 반듯하게 구획을 정해 얌전하게 앉아 있다.

한 친구가 도시락 뚜껑을 덮고 옆으로 예닐곱 번 흔들자 도시락 속 내용물은 화려한 마술처럼 김치 볶음밥이 됐다. “야아.”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옛날 도시락 같은 학창 시절 친구들이 수년 동안 매달 한 번씩 정례적으로 만날 수 있는 데는 한 친구의 공헌이 크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녀를 ‘모짱’이라고 부른다. 모임의 장(長)이기도 하고, ‘얼짱’ ‘몸짱’처럼 모임을 반짝반짝 빛내는 ‘짱’이기도 하다. 그녀를 통해 본 모짱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하나. 디제라티(Digerati). 디지털(digital)과 리테라티(literati·지식계급)의 합성어다. 개인 홈페이지, 인터넷 메신저, 휴대전화 문자서비스 등으로 자신과 친구들의 근황을 틈나는 대로 알린다.

둘. 음식 박사.

사교 모임은 음식으로 시작해 음식으로 끝난다. 잡지, 인터넷, 발품 등을 총동원해 음식점의 흥망을 익힌다. 나의 ‘모짱’ 친구는 두툼한 계란말이와 궁중 떡볶이를 맛있게 하는

주점을 잘 알고 있다

셋.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그녀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주말 시간을 활용해 바이올린, 오르간, 요가 등을 배운다. 미니 화분에 물을 주는 평화로움처럼 취향이 자란다.

넷. 산타.

나누고 베푸는 즐거움을 안다. 외국 출장길에 사 온 액세서리, 친구가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갖고 싶어 했던 선물 꾸러미가 그녀의 양손에 늘 들려 있다.

유럽 경제인들의 비공식 사교모임에서 출발해 세계 최대의 국제회의가 된 ‘다보스 포럼’은 최근 올해 세계의 화두로 ‘나눔’을 제시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모짱’ 친구를 지켜보면 여유와 나눔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성들여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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