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나, 돌아갈래"…호암아트갤러리 '아트 스펙트럼'展

입력 2003-12-25 17:44수정 2009-10-1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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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창 작 ‘뢴트겐의 정원’. 조명이 내장된 라이트 박스 안에 병원에서 버려진 X-레이 필름들을 오려 붙였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등 다양한 은유를 담고 있다. 원대연기자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는 올 4월 본보가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라는 주제아래 실시한 전문가 대상 조사에서 국내 최고의 전시공간으로 꼽혔다. 이 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주류공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원로 대가 및 정상급 작가들의 전시가 대부분이다.

그런 호암갤러리가 2001년부터 격년제로 열고 있는 ‘아트 스펙트럼’ 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주류’가 선택한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전이기 때문. 현대미술의 잠재성과 싹을 발견하고 키우자는 기획의도대로 2년마다 한번씩 참신한 신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여러모로 1회 전시회와 구분된다. 우선 연령대가 30∼40대에서 20∼30대로 내려갔다. ‘한번 해 본다’는 실험적 기획 차원에서 벗어나 ‘스펙트럼’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다양하면서도 깊이있게 작가의 색깔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또 1회 전시가 사진, 영상미디어, 설치미술을 대거 수용한 ‘디지털형’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회에선 디지털적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평면과 회화로의 복권을 강조한 ‘아날로그형’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했다.

정수진 작 ‘Painkiller(진통제)’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수진(34)의 그림 ‘Painkiller(진통제)’ 연작 시리즈와 마주친다. 화폭 전면에 빽빽하게 들어 찬 사람들과 사물들을 통해 복잡다단한 일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회화가 죽었다’는 이 시대에 작가는 한 장의 그림이 여전히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정교한 그림을 통해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현실에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현실이라는 고통을 치유하는 비현실의 세계를 진통제로 표현한 셈이다.

이어 만나는 박세진(26)의 풍경화들은 풍경이라는 전통적 장르를 선택한 20대 화가의 실험적 시선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동양에선 안견의 ‘몽유도원도’, 서양에선 르네상스와 낭만주의시대 풍경화가들의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했다. 수채물감, 버찌·장미즙 등 안료의 얼룩이나 흔적으로 원경을 표현한 작품 속에서 집, 사람, 사물들은 겨우 보일락 말락 그려져 있다. 벗어나고 싶은 탈주의 욕망과 어차피 갇힐 수밖에 없는 절망이 충돌하는 것을 표현한 화면이다.

또 다른 평면작업인 한기창(36)의 ‘뢴트겐의 정원’. 얼핏 화려한 자개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병원에서 버려진 X-레이 필름들을 조명이 내장된 검은 색 라이트 박스 위에 오려 붙인 작품이다. X-레이 필름이라는 죽은 재료로 아름다운 식물의 형태를 표현했다. 삶과 죽음, 고통과 치유, 절망과 희망 등 다양한 은유가 깔려 있다. 작가는 스스로 경험한 투병생활이 작품의 단초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4점은 설치와 사진작업이다. ‘미나&사사’라는 이름아래 선보인 30대 두 작가의 공동작업인 ‘How Much Is Enough?(어느 정도면 충분하겠습니까)’는 소비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과 예술에 대한 고민들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다. 사진작가 이윤진(31)의 ‘정물(Still life)’ 연작은 식탁 밑, 벽 모서리, 탁자 구석 같은 사물의 한 지점을 포착해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문경원(34)의 동영상작 ‘뉴스 놀이’는 TV 뉴스를 매개로 소통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술을 활용해 보여줬다.

2층 전시실을 다 차지한 이한수(37)의 설치작 ‘팬시 니르바나(Fancy Nirvana)’는 초록, 빨강, 주황색의 플라스틱 보살 두상(頭像) 500개로 구성된 작품. 두상들은 서로 모여 있거나 떨어져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설치돼 있다. 이 중 일부 두상의 이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나와 벽과 천장을 쏘면서 천사, 하트, 비행접시 등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모티브들을 보여준다.

내년 2월 29일까지.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마련된다. 02-750-7824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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