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이지욱/‘대륙속의 우리 역사’ 찾아나서자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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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러시아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연해주 얘기만 나오면 “옛날에는 한국 땅이었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정말이냐”는 질문에 고구려와 발해 역사가 줄줄 나오고, “그렇다면 고구려를 위하여 한잔!”을 외치는 그들과 보드카잔을 비우는 것으로 술자리를 마치기 일쑤다.

사업상 이유뿐 아니라 고대사 관련 역사소설을 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극동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몽골 등을 자주 여행하곤 한다. 시베리아의 야쿠트(사하)공화국에서는 우리와 너무도 닮은 생김새, 대가족제도나 솟대 등 유사한 풍속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 에모리대 연구소의 세계 종족별 DNA 분석 자료에 따르면 야쿠트인과 인근의 부랴트인, 아메리카 인디언의 DNA가 한국인과 거의 같다고 한다.

바이칼호 가운데 있는 올혼섬에는 고구려 장군이 다녀갔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동(東)몽골에는 5세기에 고구려 장수왕이 당시 만리장성 북부의 광대한 초원을 지배하는 대제국인 유연(柔然)과 ‘조인트 벤처’로 말(馬)목장을 기획했던 ‘지두우’라는 대초원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동쪽 이시크 지방의 옛 무덤들은 신라와 똑같은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 구조며 이곳에서 발견된 미라의 모자에 달린 디자인은 신라의 금관 디자인과 똑같다. 또 알타이 고분의 그림에는 신라와 가야인들이 주로 쓴 곡옥(曲玉)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의 지배계층은 동(東)흉노 계통이었다는 학설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동서로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까지, 남북으로는 만리장성에서 북극해까지의 광대한 지역은 과거 우리 민족 또는 최소한 우리 민족과 혈통(DNA)이 같은 민족의 왕성한 활동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국가를 어느 나라 역사에 포함시킬 것인가? 러시아사? 중국사? 아니다. 그들은 항상 북방민족과 싸워 왔고 혈통과 언어 전통 문화가 다르다. 당연히 인종적으로 가장 가까운 우리의 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이름으로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속인주의(屬人主義)를 따르는 게 원칙이다. 중국처럼 속지주의를 주장하면 한때 지구의 반을 다스리던 영국에는 세계사가 자신의 역사가 된다.

북방의 광활한 영토에서 명멸하던 대제국들, 곤융 흉노 칙륵 선비 유연 북위 돌궐 거란 여진의 역사를 연구해 우리 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 중국처럼 억지 방식이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의 도리로서 말이다.

그런 뜻에서 동북공정에 맞서 ‘북방공정’이라 할, 북방민족 근원 찾기 계획(North root project)을 세워 보면 어떨까? 고구려가 수·당군을 막기 위해 돌궐 말갈과 동맹했듯이 몽골과 러시아도 참여시키면 국제적인 프로젝트가 된다. 문화인류학, 환경학, 경제 영역을 포함시킨 종합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지녔던 북방민족의 역사는 아직도 황무지이며 자욱한 안개의 베일에 가려 있다.

지식은 먼저 아는 자가 지적재산권을 가진다. 우리가 게으름 피우는 사이에 우리와 인종적으로 유사한 이들 민족의 역사를 다른 나라가 가로채 간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지욱 러시아 한국공단 대표·역사소설가 leejiuk@onlin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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