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키신저 외교'… 베트남 평화협상 결렬

입력 2003-12-12 18:41수정 2009-10-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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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정부의 압력에) 버티면 우리가 승리한다.”

196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닉슨 후보는 남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에게 전문(電文)을 띄웠다.

당시 박빙의 선거전을 치르고 있던 닉슨. 그는 민주당의 존슨 정부가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지 협상 타결을 저지해야만 했다.

그가 티우에게 보낸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남베트남에 훨씬 유리하게 협상이 이루어질 터이니 존슨 정부의 협상안을 거부하라는 것. 베트남판 ‘북풍(北風)공작’?

결국 티우는 협상을 거부했다. 선거가 불과 사흘 앞이었고 닉슨은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 닉슨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던 협상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회고록에서 ‘특별한 루트’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 특별한 루트가 바로 키신저다.

20세기 최고의 외교전략가로 불리는 키신저. 그의 경우처럼 한 개인의 역사관과 정치철학이 국가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키신저의 외교전략은 ‘도덕적 모호성’과 ‘차악(次惡)의 독트린’으로 압축된다. 그 기저에는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민주주의의 파괴를 지켜봤고 유대인으로서 ‘아우슈비츠 충격’을 겪어야 했던 그다. ‘힘’과 ‘국가이익’을 강조하는 현실정치론은 허무주의자 또는 극단적 실용주의자로서 키신저 외교를 탄생시켰다.

국가기밀을 누설해 결과적으로 베트남전을 4년이나 연장시켰던 키신저. 그는 1972년 8월 북베트남의 레둑토와 정전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협상은 그해 12월 티우의 반발로 결렬되고 만다.

키신저는 닉슨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폭격을 재개하는 것 외에 돌파구는 없습니다.” 1973년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된 폭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60만명이 희생됐다.

키신저는 평화마저도 ‘전쟁’으로 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노벨평화상이라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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