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클럽 ‘40대 이상 사랑방’에서 시인이 탄생했다

  • 입력 2003년 12월 2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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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만큼 쓰고도/끝내/마저 쓰지 못한 사연은/뜬금없이 찾아오는 통증이 되고 맙니다/당신이 그리운 날은/약속처럼/하늘에 별이 가득 합니다.

동아닷컴 커뮤니티 40대 이상 사랑방(http://www.donga.com/e-county/club/club_index.php?bcode=001)에서 시인이 탄생했다. 장남제(51‧본명 장승규)씨가 바로 주인공.

그동안 ‘40대 이상 사랑방’의 창작 게시판 ‘살며 사랑하며’에 써온 백여편의 작품 중 88편을 추려 서정시집 ‘당신이 그리운 날은’ (도서출판 찬우)을 출간했다.

진주 남강이 고향이라는 시인의 본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무역업체 대표. 88년 LG 지사장으로 건너갔다가 정착했다.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어언 나이 50줄, '갑자기 밀려든 외로움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낀 그는 학창시절부터 동경했던 시(詩)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가슴속을 가득 메운 그리움을 털어내듯 적고 또 적었다. 시 한 장에 그리움 한 장. 시는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답답한 마음은 풀 길 없었다. 내 시를 누군가 읽어줄 수 있다면…."

그러던 그에게 누군가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 곳에 들어가면 한국 소식도 들을 수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서.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낸 곳이 바로 동아닷컴 중장년의 네티즌 모임 ‘40대 이상 사랑방’.

40-50대 네티즌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사이버 클럽이다. 동호회 하부 메뉴인 ‘살며 사랑하며’ 게시판에는 회원들이 굽이굽이 풀어낸 삶의 흔적들이 수필로, 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예가 바로 내가 찾던 그 곳이구나.

당장 시 한구를 올렸다. 그랬더니 메일이 한통 날아왔다. 클럽 회원으로 신고하지 않고 글을 남겼으니 삭제하겠다고, 그게 싫으면 빨리 가입하라는 운영자님의 불호령이었다.

인터넷 왕초보 장남제씨는 뭐가 뭔지 몰랐다. 다만 이 망망대해에서 간신히 붙잡은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가입하고 자기소개서를 적어 보냈다. 성의 없다고 퇴짜를 맞을까봐 부인과 아이들 생년월일까지 시시콜콜 적어 보냈다. 시인은 아직도 그때의 가입서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작년부터 사랑방 게시판 ‘살며 사랑하며’에 올린 시는 130여편. 하루걸러 한번 이틀 걸러 한번씩 꾸준히 썼다고 한다. 매일 확인하는 조회수는 시심을 더욱더 일깨워줬다.

그랬더니 애독자 한 분이 등단을 제의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적어놓은 시중 10여편을 ‘월간 문학세계’로 보냈더니 지난 9월 ‘잃어버린 꽃고무신’ 등 5편이 신인문학상에 당선됐다. 이왕 등단할 바엔 시집까지 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출판사도 알아봤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번의 시집‘당신이 그리운 날은’ (도서출판 찬우).

시집이 나오자 애독자인 ‘40대 이상 사랑방’의 형님, 아우, 누님들이 더 난리다. 운영자 ‘동일 형님’은 “내가 남제 폭격으로 혼절할 듯 하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모두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워 장남제씨는 남아공서 비행기로 날아와 사랑방 번개모임을 열기도 했다.

시집에는 일찍 여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대표작 ‘당신이 그리운 날은’을 위시해 어릴적 놀던 진주 남강의 추억을 담은 ‘잃어버린 꽃 고무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을 씨 고구마에 비유해 소박하게 써내려간 ‘아버지의 유산’등 정겨운 작품들이 가득하다.

동아닷컴 ‘40대 이상 사랑방’으로 맺어진 시인의 인연. 오늘도 장남제씨는 따뜻한 그림이 곁들여진 자작시를 게시판에 올리며 사랑방 독자들의 ‘리플’ 감상문에 일일이 답글을 단다. 어엿한 ‘사이버 시인’으로서 이렇게 든든한 중년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인기작가 ‘귀여니’가 부럽지 않다면서.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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