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1월 2일 17시 1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혈액의 삶과 죽음=혈액은 뼛속에 있는 골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골수 안에 있는 조혈모세포에 의해 만들어진다. 혈액은 혈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와 혈장으로 나뉜다. 수명은 혈소판이 10∼14일, 적혈구는 120일 정도. 백혈구는 림프구를 제외하고는 1∼2일밖에 살지 못한다.
건강한 성인은 4∼6L의 혈액을 가지고 있다. 혈관을 따라 순환하면서 산소와 영양분, 노폐물을 운반하며 바이러스와 세균의 침투에 대항해 싸운다.
혈액은 지라(비장)에서 숨을 거둔다. 그러나 이때도 재활용 과정을 거친다. 지라는 혈액을 분해하면서 아미노산과 철분을 따로 흡수해 필요한 기관으로 보낸다.
▽가족 혈액이 좋다?=가족의 피가 안전할까. 진단검사의학자들은 “그렇다는 의학적인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나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혈액은 다른 사람의 피라 해도 모든 검사를 통과해 깨끗함이 입증된 피라는 것.
무엇보다 가족간에 병을 숨기기 때문에 가족의 피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령 에이즈 환자가 가족에게 사실을 숨기면 숨겼지 터놓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서는 가족 수혈을 권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에게 수혈하는 것 역시 의학적으로는 좋지 않다. 모든 피는 저마다 다른 항원들이 있다. 남편 피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결국 새로운 항원이 아내의 몸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아내의 면역시스템은 당연히 그 항원에 대한 항체를 만들게 된다.
이제 아내가 임신했다고 다시 가정하자. 태아는 엄마와 아빠 모두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그러다보니 아빠로부터 유래된 항원을 가진 적혈구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엄마의 혈액에 있는 항체가 태아의 항원을 공격하는 것이다. 태아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이 병을 ‘신생아 용혈성 질환’이라고 한다.
▽피, 넘쳐도 모자라도 병=‘적혈구증다증’은 지나치게 피가 많이 만들어져 생기는 병이다. 출혈 또는 피 부족을 ‘체험’했던 조혈모세포가 ‘매일 1% 생산, 1% 사망’의 규칙을 어겨 비정상적으로 피의 생산량을 늘린다. 피가 늘면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 이럴 땐 피를 빼 주는 치료를 하게 된다. 백혈병 역시 백혈구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발생한다. 백혈구는 정상 혈액세포의 생산과 성장을 방해한다.
빈혈은 적혈구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대표적인 질병. 산소공급이 안돼 쉽게 숨이 차고 심장이 빨리 뛰며 기운이 없어진다. 철분 제제를 복용하면 낫지만 골수 이상이 원인이라면 항암 치료와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자가항체’가 적혈구를 죽여 버리기도 한다. 이 경우 자신의 혈액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혈액도 파괴하기 때문에 수혈보다는 자가항체 수를 줄이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혈우병은 혈액응고를 담당하는 ‘제8인자’가 만들어지지 않아 생기는 병. 결국 상처 등으로 인해 피가 나면 제대로 굳지 않는다. 난치병에 속한다.
▽피에 대한 오해들=AB형과 O형 사이에 AB형 또는 O형인 아이가 태어났다면 ‘불륜의 씨앗’일까. 일반적으로 이 경우 아이는 A형 아니면 B형이어야 한다. 그러나 AB형과 O형 부모 중에도 ‘Cis-AB’형이란 혈액형을 가지고 있으면 A유전자와 B유전자가 통째로 유전돼 AB형 또는 O형 자녀가 나올 수 있다.
‘피갈이’를 들어봤는가. 1970년대 부유층 노인들이 젊은 사람의 피를 사서 수혈 받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젊은 사람의 피로 바꾸면 회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회춘을 위해 젊은 검투사의 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이 말대로라면 현재 학생과 군인이 주로 헌혈하니까 피를 받은 사람은 모두 회춘해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나쁜 피를 뽑아내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도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피를 맑게 하는 법은 없을까. 의학자들은 몸이 건강하면 피도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미역국이 피를 맑게 한다는 속설이 있기는 하지만 음식을 골고루 먹고 적절한 운동과 휴식을 겸하는 게 가장 좋다. 다만 동물성 기름이 지나치게 많은 음식은 혈액 속의 지방질 농도를 높이므로 피하도록 한다.
(도움말=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권석운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현옥 교수)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혈액형과 성격▼
혈액형과 성격은 관련이 있을까.
일본의 경우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75%가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는 인생설계, 배우자 선택에까지 이를 적용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떨까. 최근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혈액은행 권석운 교수는 남녀 348명을 대상으로 성격을 유추할 수 있는 설문지를 돌렸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82.5%가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자(86.5%)가 남자(73.1%)보다 더 “그렇다”고 대답했다.
도전정신은 B형이 65.3%로 가장 높았다. 특히 B형 남자(77.4%)가 높았다. 규칙 또는 틀에 얽매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혈액형은 O형(82.6%)이었다. O형은 또한 가장 화를 참지 못하는(56.0%) 경향을 보였다. 반면 A형은 가장 화를 잘 참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혈액형은 A형(85.4%)과 AB형(84.2%)이 가장 많았다. 어떤 일을 바라볼 때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은 AB형(71.1%)이 다른 혈액형에 비해 5∼1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응답자 수가 비교적 적고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는 등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다음과 같이 잠정결론을 내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A형은 규칙을 잘 따르며 인정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앞장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B형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반면 규칙을 싫어하고 인내심이 약한 편이다.
O형은 일에 앞장서는 것을 좋아하며 혼자보다는 남들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인내심이 약해 화를 참지 못하는 편이다. AB형은 분석적 경향이 강하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에 충실한 편이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