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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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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는 곧 ‘절규’로 이어진다. “정족수 미달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원님들은 빨리 본회의장으로 입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국회 의사국 의안2계장인 권영진(權寧振·38·입법고시 14회) 서기관.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을 보좌해 본회의장에서 열리는 모든 회의를 실무 진행하는 게 그의 ‘본업’. 그러나 그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의원들의 출석 점검 및 독촉이다.
“오전 10시로 정해진 본회의 개의시간에 맞춰 본회의장에 도착하는 의원은 전체 273명 중 평균 6, 7명에 불과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의장의 눈치를 살핍니다. 의장이 사인을 보내면 곧장 마이크를 들어 참석 독촉 방송을 내보냅니다.”
본회의가 열리는 날 권 계장은 평균 5차례의 독촉 방송을 한다. 경우에 따라선 15번 이상 마이크를 잡는 날도 있다. 개의 정족수(재적의원의 5분의 1 참석)에 미달해 1시간 넘게 회의를 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이 열린 어느 날 고건(高建) 총리 등 10여명의 각료가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의석에선 3, 4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의사국에서 각당 원내총무실에 ‘제발 근처에 있는 의원들을 회의장으로 모셔와 달라’고 ‘SOS’를 쳤습니다.”
그는 “정시에 도착한 의원들이 ‘곧 시작한다고 해놓고 왜 회의를 진행하지 않느냐’고 호통칠 때면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마저 든다. 개의가 계속 지연되면 그나마 먼저 온 의원들이 자리를 뜨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만섭(李萬燮) 전 의장의 경우 본회의장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내가 직접 출석을 부르겠다’며 정시 출석을 독려하기도 했지만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다선 중진들보다 초재선 의원들이 지각 또는 결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권 계장의 지적.
그가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오후 2시 본회의가 속개되기 직전. 오전 회의에만 잠깐 참석한 뒤 본회의장을 떠나버리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회법상 아무 때나 잠깐만 출석해도 그날 본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건 아니겠지만 오후 출석률이 매우 저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변칙 출석’ 탓에 본회의를 견학하러 온 지방의 초등학생들이 정작 회의 구경도 못한 채 돌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권 계장은 요즘 이런 폐단을 없앨 방안을 연구 중이다. “본회의장을 하루 종일 지킨 의원과 5분 출석한 뒤 나가버리는 의원에게 지급하는 수당은 차별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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