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형준 첫 산문집 '저녁의 무늬' 펴내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45분


시인 박형준은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산문집에 담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시인 박형준은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산문집에 담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시인 박형준(37)이 등단 13년 만에 첫 산문집 ‘저녁의 무늬’(현대문학)를 묶어냈다.

산문집 첫머리에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문단 말석에 나온 이래 틈틈이 써온 십수년간의 기록은 강물에 떠 있는 불빛처럼 내 삶의 잔상(殘像)들이다. 시로는 이야기하기 힘든 고백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흔적들이다.’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1994),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1997),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2002·동서문학상 수상)를 통해 느릿하게 비애를 드러내는 특유의 시학을 이어온 시인은 그 슬픔과 연민의 기원을 이번 산문집에서 털어놓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변두리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도시 생활. 장소는 달랐지만 늘 고향의 한쪽 면이 현실과 맞붙어 있는 모습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시인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의 ‘데칼코마니’를 떠올린다. ‘고향을 접으면 도시의 비애가 나타나고, 도시를 접으면 고향의 비애가 나타나곤 하였다.’

이제는 공동우물과 두레박, 미나리꽝, 느티나무도 사라진 고향이지만 그래도 그곳의 어머니는 모든 것의 ‘뿌리’가 된다.

모처럼 아들네에 들른 어머니가 남긴 짧은 편지. ‘형준아 어머니가 너 잠자는데 깨수업서 그양 간다 밥 잘 먹어라 건강이 솟애내고 힘이 잇다.’

빈한했던 유년의 추억, 초라한 변두리와 빈방, 어머니는 시인의 바탕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무늬다. 가난한 삶, 평범하고 사소해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들에서 끌어올린 진솔한 이야기들은 거친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일상 가운데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에서 ‘가난의 상상력’을 발동시키고, 문학은 ‘꿈을 가진 자가 들어서는 곳’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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