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침묵당한 팔레스타인…'

  • 입력 2003년 8월 29일 18시 45분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침묵당한 팔레스타인 역사/키스 W 휘틀럼 지음 김문호 옮김/384쪽 1만8000원 이산

영국 셰필드대의 성서학자인 저자는 논쟁적인 이 저서에서 성서에 대한 우리의 ‘상식’에 서양인들의 ‘음모’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기원을 추적했다. 저자는 성서 고고학자들의 발견과 성서학자들의 연구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내지는 소유를 공공연하게 혹은 암묵적으로 지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도발적인 책에서 저자는 21세기 학자들이 진행해 온 고대 이스라엘의 ‘재구성과 발명’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기원을 보강하기 위한 ‘작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논지를 원용해, ‘팔레스타인 역사’를 고의적으로 폐쇄시키려 하는 노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주의 입장에 익숙한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잘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서양인들이 관찰한 19세기 팔레스타인은 광활한 사막이었고, 간간이 나타나는 베두인들은 도덕적으로 무책임하고 정치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침략만이 이들을 문명화하고 성역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음모가 이미 성서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땅을 침략하여 (여호수아가 여리고성과 가나안땅을 무력으로 침공한 것처럼) 그 안에서 ‘선진’ 문명과 ‘유일신’ 종교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서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은 이런 해석을 돕기 위한 꼭두각시로 등장해 정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는 제2의 가나안 침공을 돕고 있다.

P R 다이비스의 저서인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In Search of ‘Ancient Israel’)’와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착-정복-재정비’라는 가나안땅 정복 관련 이론들을 검토한다. 1937∼39년 독일의 A 알트는 예수의 고향인 갈릴리 지역이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어 기원전 150년까지 유대인들이 거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이스라엘인들이 나라를 세우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평화적으로 ‘정착’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W F 올브라이트는 원주민들이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성서에 나오는 ‘헤렘’이라는 전쟁법에 의해 무참히 전멸시켰다는 ‘정복’이론을 주장했다. 이들 두 학자와는 달리 G E 멘덴홀은 사막 유목민들의 침공은 없었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에 분열과 반란이 일어났다며 고대 팔레스타인 도시국가들의 부패상을 강조했다. 심지어 좌파 이스라엘 학자인 N K 고트발트도 이스라엘의 선진화된 정치제도가 낙후된 팔레스타인을 침공, 정복, 그리고 ‘재정비’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시온주의자들이 ‘땅’에 대한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모호한 고고학적 자료를 전략적으로 나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자들의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사가들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지나치게 논쟁적인 글쓰기를 하고 19세기 성서지리학에 대한 중요한 경향들을 생략함으로써 논지전개와 결론에 간혹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성서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세계관에 사로잡힌 학자, 일반교양인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낸 옮긴이의 노고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nelcb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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