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國政 혼란이 언론 탓이라니

  • 입력 2003년 5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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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면 운전사 앞에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예쁜 소녀의 사진 아래 ‘오늘도 무사히’라고 적혀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자들은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언론사로선 ‘무사고’는 개점휴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일용할 양식은 바로 사건사고가 아닌가.

▼이창동 장관 균형감각 상실 ▼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다시 언론에 포문을 열었다.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증폭시켜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보도에 따르면 24일 평화방송에 출연한 이 장관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가까운 분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토로한 것이 가십이 아니라 신문의 1면이나 TV 9시 뉴스의 머리를 장식한 것은 균형 감각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이어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이 언론의 중요 기능의 하나인데, 이것을 증폭시키고 ‘이제 위기다’해서 위기론으로 발전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대통령의 심경 토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당혹해 하면서도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 인간적 토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말이다. 첫째, 청와대에서 5·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을 면담하는 자리가 어떻게 해서 사적(私的)이란 말인가. 공인은 말을 아껴야 한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입은 마음의 문이니 입 지킴을 엄밀하게 하지 않으면 마음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뜻은 마음의 발이니 뜻이 달리는 것을 엄밀히 막지 않으면 옆길로 달리고 만다.’

둘째, “근래 제가 부닥치는 문제가 어렵다. 이 상황으로 가면 대통령을 제대로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되풀이한 말이 가십거리인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위기의식과 난감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톱기사가 되고도 남는다.

언론학자 허버트 갠즈는 2개의 신문과 2개의 시사주간지를 대상으로 뉴스 밸류를 조사한 바 있다. 그는 8가지 뉴스 밸류를 찾아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국가지도력이었다. 곧, 대통령이야말로 최고의 뉴스가치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의 초점을 피하기 어렵다.

셋째, 정말 언론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가. 뉴스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주로 다룬다. 부정부패와 같은 도덕적 무질서, 성수대교의 붕괴나 삼풍백화점 참사와 같은 기술적 무질서, 시위와 파업과 같은 사회적 무질서, 그리고 홍수 지진 해일 등 자연적 무질서가 그것이다. 물론 언론의 기능은 비판하고 고발하는 데 끝나지 않고 분석하고 전망함으로써 올바른 여론을 조성해 국론을 통합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

넷째, 지금과 같은 국정 위기와 정책의 혼란이 언론 때문인가. 이 장관의 발상은 한마디로 ‘균형 감각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언론이 크게 써서 위기가 오고 있는가. 언론은 오로지 사회의 거울일 뿐이다. 국정 난맥과 정책 실패를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정부의 무능을 은폐하려는 얄팍한 술책으로밖에 안 보인다. 심지어 나라종금사건에 연루된 핵심인물조차 “검찰의 논거는 내가 구속되지 않으면 봐주기 수사라고 언론이 공격해 댈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구속하려 한다”고 자신의 비리를 언론 탓으로 호도하고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수구언론은 노 대통령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나라종금 수사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진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언론은 오로지 사회의 거울일뿐 ▼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 장관은 취임 인사에서 장관 대하는 직원들을 “조폭 문화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는가 하면, 최근 한 잡지에서는 영화예술을 빗대 “누가 아비인지 모르는 시장판 태생의 ‘창부의 자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위방(爲邦)은 재어용인(在於用人)이라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사람 쓰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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