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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6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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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우리들은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어주면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쏙쏙 받아먹었다. 그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전혀 음식을 만들지 않는 아버지에게 내가 그때 말을 하면 아버지는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걸 보면 당신은 무서웠다고 했다. 자그만치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먹성이 다들 좋으니 아닌게 아니라 쌀독에 쌀이 푹푹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 무서움이 아버지에겐 살아갈 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먹성만이 무서웠겠는가. 어린 나이에 전염병으로 이틀사이로 부모를 잃고 종가의 장손노릇을 하며 지금껏 우리들을 먹이고 학교 보내며 평생을 보낸 내 아버지에겐 무섭지 않은 젊은날이 단 하루라도 있으셨을까. '아버지'라고 상징되는 권력과 억압을 내 아버지는 전혀 지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연약하기조차 했다. 그분이 세상과 대적했던 방법은 온화함과 자상함이었다. 본질이 그러하셨다.
언젠가 그쪽 지방신문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중앙에 있는 신문에 날 때는 아무 반응도 안보이시더니 그쪽 신문은 뒤 주머니에 꽂아 가지고 다니시며 내 딸이 글씨를 잘 써서 신문에 났다고 자랑하셨단다. 그렇게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따금 시골집에 내려가 이제는 병을 친구 삼아 사시는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볼 때면 도시에서 죽끓듯 하던 욕망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제는 내가 무엇이라도 맛난 음식을 좀 해드리고 싶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입맛을 잃으신 듯 하다. 좀체로 뭘 잡수시려고도 어디 좋은데 놀러 가시려고도 안 하신다. 나는 그것이 참 속상하다.
소설가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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