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山時에 들러 매화향기 담아 가소서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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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청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쯤이면 서울 길상사에 들러 주지 덕조 스님의 토굴 옆에 핀 청매화 한 송이를 띄운 녹차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것이 큰 낙(樂)이다.

4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 보니 덕조 스님으로부터 e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봄이 어느 날 갑자기 왔습니다. 그리고 벌써 떠나가려고 합니다.

오는 사람 붙잡을 수 없고, 가는 사람 잡을 수 없는데

매화 향기가 가득한 이 순간은 좀 붙잡고 싶은데 도력이 없어서

그냥 향기를 바라보며 좋다∼ 좋다∼ 너무 좋다∼ ∼ ∼ 하며 있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매화 향기가 가기 전에 가슴에 매화 향기를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성급한 날씨 속에 매화 향기가 마냥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내일이 기다림의 고비일 것 같습니다. 청안하신 봄날이 되소서….

/길상사 행지실에서 德祖 합장’

청매화가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모습과 청매화를 띄운 찻잔 하나가 담긴 그림 파일도 첨부돼 있었다.(이렇게 멋진 스님이 있으신가!)

세상에 이런 초대를 물리칠 장사는 없다. 모니카 벨루치와 이영애의 초대라도 뒤로 미룰 판이다.

점심에, 하릴없는 객식구들까지 길상사에 데리고 가 봄향기 차향기 사람향기에 맘껏 취했다. 청매화가 봄눈(春雪)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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