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교생실습 나간 ‘동갑내기 과외하기’ 배우 권상우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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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1시 대전 중구 동산중 3학년 9반에는 신참 교생 한 명이 들어섰다. 그가 오른쪽 가슴에 단 파란색 명패에는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권상우’라고 적혀있다. 이날은 권상우의 교생 실습 첫날이다. 그는 26일까지 이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한다. 권상우라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버릇없는 학생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배우가 아닌가. 과외교사에게 반말은 기본, 면전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말끝마다 ‘죽을래?’를 연발하던 그가 교단에 섰으니 권상우도 학생들도 이같은 상황에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오늘은 31일. 31번!

이날 수업의 주제는 ‘판화’.

“오늘 31일이니까…, 31번! 32쪽 ‘판화의 세계’를 읽어보세요.”

날짜별로 학생을 호명하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호명할때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법.그는 쑥스러운지 이내 “선생님들이 원래 이런 식으로 발표를 시키잖아요”라며 웃는다.

수업은 노트북 컴퓨터를 교실에 마련된 TV에 연결해 진행됐다. 노트북 속에 그가 1개월간 준비한 자료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판화의 원리와 판화의 응용 등을 설명하지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날은 그의 교생 실습을 보기 위해 취재진이 50명 가량 왔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질문 하나 던지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권상우가 나섰다.

“다음 시간부터 판화 실습을 할테니 밑그림을 그려보세요”

아이들은 친구의 그림을 곁눈질을 해가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카메라가 이들의 모습을 담으려 하자 지우개로 ‘벅벅’ 지운다.

●선생님이 아니고 연예인

권상우가 진행하는 수업에는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권상우도 너무 얼어 있었고 아이들도 어리둥절해 있던 터라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상황을 보다못한 신승욱 교사(미술 담당)가 나서 “야 너희들 왜 그래”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권상우는 쉬는시간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다. 수업이 끝나면 그가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로 전교생이 몰려들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 사인펜과 종이를 건네는 아이도 있다. 그의 최근 출연작인 SBS 드라마 ‘태양 속으로’의 대사를 해보라는 주문도 했다. 학교 주변에는 수업을 빼먹고 권상우를 보러온 이웃 여학교 학생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학생들의 눈에 그는 아직 교생이 아니라 연예인이다.

3학년 9반 맹지태군은 “멋있다. 형(권상우)이 선생님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다가가 “선생님으로서 권상우씨가 어떻냐”고 물었다. “어설프다”는 게 중평.

이날 눈길을 끈 것은 권상우만이 아니다. 남학교이다 보니 각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여성 리포터들도 학생들의 관심을 샀다. 특히 MBC ‘섹션 TV 연예통신’의 리포터 조정린이 학교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누나, 사랑해요” “사인해 주세요”를 외쳐댔다.

●수업을 마치고

수업을 마치고 인터뷰를 가진 권상우는 “마음의 준비만 많이 했다”며 “수업 전반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바쁜 촬영스케줄 때문에 교생 실습 준비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그의 친형이며 이 학교 영어교사인 권상명씨(32)가 많은 도움을 줬다. 연예인인 그를 흔쾌히 교생으로 받아들일만한 학교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 1년전부터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해왔다.

권상우는 교생 실습이 결정되자마자 형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물을 물었다. 그가 신고 들어온 실내화도 그가 직접 산 것이고 ‘초크 홀더’는 팬들이 “열심히 가르치라”고 선물해준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버릇없는 학생이었는데 제가 교단에 서니까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역시 학교에 오니까 아침을 먹고 왔는데도 2교시 끝나니까 배가 고프더라고요.(웃음)”

수업이 끝나자마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들어가보니 ‘동산중학교’가 인기검색어 5위에 올라 있다. 그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권상우는 “학생들 고민도 들어주고 공도 함께 차면서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교생 선생님이 되겠다”며 다음 수업 교실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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