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31>正 名(정명)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28분


코멘트
경-경칠 경 揚-드날릴 양 顯-드러낼 현

匿-숨길 닉 汚-더러울 오 陋-누추할 루

TV를 보면 罪(죄)를 지은 被疑者(피의자)가 옷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는 장면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감히 ‘얼굴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은 옛날 이마에 먹을 쳤던 형벌 ‘경’(경)에서 나온 말이다. 경을 당하고 나면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지금은 ‘얼굴에 X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 역시 얼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 석 자가 이렇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니는 象徵性(상징성)에 있다. 즉 얼굴이 개인의 肉身(육신)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이름은 精神(정신)과 存在(존재)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孝道의 첫걸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인가? 일찍부터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김)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처럼 有名하고 揚名(양명·이름을 날림)하여 靑史(청사)에 留名이라도 한다면야 최대의 보람이겠지만 자칫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떳떳하지 못해 이름을 숨기면 匿名(익명), 더럽히면 汚名(오명), 억울하게 뒤집어쓰게 되면 陋名(누명)이 된다. 또 함부로 팔면 賣名(매명), 그럴 듯하게 내세우면 美名(미명)이다. 또 못된 짓으로 惡名(악명)을 떨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이름은 자기 하기에 따라얼마든지 榮辱(영욕)을 달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름을 바르게 잘 간직하는 것이 ‘正名’으로 孔子 할아버지가 主張(주장)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혼란스러웠던 春秋時代(춘추시대)였다.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백성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가옥과 전답은 깡그리 파괴, 약탈되었으며 도처에서 悲鳴(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왜 세상이 이렇게도 혼란스러운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다들 자기 職分(직분·곧 名分)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천자는 천자대로, 諸侯(제후)는 諸侯대로 나름대로의 職分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이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다들 자신의 職分을 바로 잡자!”

이른 바 正名論이다. 이름, 직분을 바르게 하자는 뜻이다. 반대로 직분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을 ‘似而非’(사이비)라고 했다. 이미 설명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