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마니아 온수진-이은정씨 부부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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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떡볶이의 맛과 풍경을 찾아 매주말 서울 시내의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이색 부부 온수진(오른쪽) 이은정씨. -박영대기자
옛날 떡볶이의 맛과 풍경을 찾아 매주말 서울 시내의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이색 부부 온수진(오른쪽) 이은정씨. -박영대기자
매 주말 서울 사대문(四大門) 구석구석의 ‘떡볶이 명가(名家)’를 찾아다니는 이색 부부가 있다.

온수진(溫秀鎭·32·서울시 월드컵 공원관리사업소 공원운영과 교육 홍보팀), 이은정(李恩姃·32·하서출판사 편집부장) 부부는 1주일에 적어도 5∼6회는 떡볶이를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떡볶이 마니아’다.

밀가루 떡에 고추장 설탕을 듬뿍 넣은 옛날 떡볶이가 이들의 관심 대상이다.

“떡볶이의 맛도 맛이지만 그 주변의 풍경을 좋아해요. 10여년 전만 해도 나무의자에 앉아 맛나게 먹던 허름한 떡볶이 가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젠 뒷골목을 한참 뒤져야 만날 수 있는 ‘낡은 사진’ 같은 존재가 돼버려 아쉬워요.” (이은정)

“우리 부부는 농경민이나 유목민 같은 ‘과거 지향적’ 삶에 관심이 많아요. 옛날 떡볶이 가게에 집착하는 것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죠.” (온수진)

이들이 최근 돌아다닌 떡볶이 가게는 줄잡아 30여 곳. 요즘 이은정 씨는 ‘떡볶이 프로젝트’의 하나로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cyworld.com/ammy7)에 떡볶이 시식 평과 주변 풍경을 정리해 띄우고 있다. 옛날 떡볶이 가게가 우리 문화의 하나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또 다른 관심사는 여행. 동해안과 제주도 등 국내는 물론 외국의 오지 여행을 즐긴다. 언젠가 회사를 휴직하고서라도 신화의 현장인 그리스 로도스 섬에서 6개월간 체류할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2000년 결혼한 이들은 서울 종로구 신교동 인왕산 자락의 전세 6000만 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온씨가 북한산을 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집 어디 없냐’고 귀동냥한 끝에 찾아낸 곳이다.

승용차가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고 가파르지만 집 마루에 앉으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펼쳐져 ‘스카이 라운지’가 따로 없다.

재테크나 내 집 마련을 생각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이들 부부.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월급도 각자 따로 쓰는 ‘독립채산제’를 고집하며, ‘물 흐르는 듯한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2세 계획’도 당분간 연기한 ‘못 말리는’ 부부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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