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二. 바람아 불어라…(4)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7시 31분


大澤의 회오리 (4)

젊어서 함께 머슴살이를 했던 옛 친구 하나가 진승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진현으로 찾아갔다. 그가 대궐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문 좀 열어주시오. 나는 진섭(陳涉)을 만나러 왔소!”

웬 초라한 농군하나가 함부로 왕의 성과 자(字)를 부르며 소란을 떨자 궁문령(宮門令·궁문을 지키는 관리)은 괘씸하게 여겨 그를 잡아 가두려 했다. 그제야 놀란 진승의 옛친구는 갖은 말로 변명해 겨우 벌을 면했다. 하지만 궁문령이 진승에게 그 일을 전해주지 않아 자신이 찾아온 걸 알릴 길이 없었다. 몇 날이고 대궐 밖에서 기다리다가 진승이 수레로 궁문을 나서는 걸 보고 그 길을 막으며 소리쳤다.

“어이, 진섭. 날세. 옛친구가 이렇게 찾아왔네.”

무심코 궁궐을 나서던 진승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수레의 휘장을 걷고 내다보았다. 젊었을 적 함께 고생하던 옛 친구가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진승은 수레를 세우게 하고 그를 불렀다. 그리고 소박한 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빈한하던 시절의 친구에게 한번 으스대 보고 싶어서였는지, 그를 수레에 태워 궁궐로 데려갔다.

“정말로 화려하구나. 진섭이 왕이 되니 궁전은 크고 높고 치장은 오묘하구나!”

궁궐로 들어온 진승의 옛친구는 크고 높은 건물과 으리으리한 치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승의 신하들이 보기에는 제 임금을 욕보인다 할 만큼 솔직한 감탄이었다. 하지만 더 큰 화근은 진승이 미천할 때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어대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임금인 진승 앞에 들고나는 일이며 말투와 행동거지가 방자하기 그지없었다. 보다 못한 진승의 신하 하나가 일러바쳤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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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님이 우매하고 무지하여 하는 수작마다 허튼 소린데 그나마 눈치 없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니 큰일입니다. 대왕의 크신 위엄이 상할까 실로 걱정입니다.”

그때는 진승도 제법 권력에 맛을 들인 뒤였다. 그러잖아도 옛친구의 무례와 무지에 적지 아니 마음이 상해 있는데 그런 말을 듣자 더 참지 못했다. 신하가 우기는 대로 옛친구의 목을 베어 임금의 위엄을 지켰다. 어쩌면 그 일은 한 성실한 야심가가 권력에 도취된 새로운 폭군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승이 옛친구를 죽이자 그날부터 주변에 있던 옛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진승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은 없어졌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 군사를 이끌고 멀리 나가있는 장수들의 자립(自立)이었다. 그 첫 번째가 조나라를 치러 간 무신(武臣)이 그 땅에 눌러앉아 스스로 왕을 일컫게 된 것인데, 경위는 대강 이러했다.

간곡히 말렸음에도 진승이 기어이 왕위에 오르자 장이와 진여는 크게 실망했다. 진승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여겨 몸을 빼낼 궁리를 하다가 어느 날 가장 충성스러운 체 말했다.

“대왕께서는 양(梁)과 초(楚) 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서 함곡관을 깨트릴 궁리를 하시느라 하북(河北)을 등한히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천하를 도모하려는 이에게는 기름지고 넓은 하북의 들판이 결코 등한히 해도 좋은 땅이 아닙니다.

신(臣)은 일찍이 조나라를 떠돌아다닌 적이 있어 그곳의 지형과 호걸들을 잘 압니다. 바라건대 기병(奇兵)을 북쪽으로 내시어 조나라의 옛 땅을 거둬 들이십시오. 그때는 저희들이 있는 힘을 다해 도와 대왕의 위엄이 북쪽까지 널리 떨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넘어간 진왕(陳王·진승)은 오래 전부터 특히 가깝게 여겨온 진(陳)땅 사람 무신(武臣)을 장군으로 삼고, 소소(邵騷)를 호군(護軍)으로 딸린 뒤 군사 3천을 주어 조나라를 치게 했다. 그때 장이와 진여도 좌우 교위(校尉)가 되어 무신을 따라갔다.

무신이 이끄는 장졸들은 백마(白馬)에서 황하를 건너 조나라 땅으로 들어갔다. 무신은 싸우기에 앞서 장이와 진여를 보내 먼저 그곳의 호걸들을 좋은 말로 달랬다.

“진나라가 어지러운 정치와 모진 형벌로 천하를 잔혹하게 다스리어 백성들을 해쳐온 지 오래 됐습니다. 북쪽으로는 만리장성을 쌓는 수고로움이 있었고, 남쪽에서는 오령(五嶺)을 지키느라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안팎으로 난리가 잦아 백성들이 어려운데도 엄중하게 세금을 거두어 군사를 부리는데 쓰니, 재물은 마르고 힘은 다하여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 진왕께서 팔뚝을 걷어 부치시고 천하를 위해 앞장을 서시어, 초나라 땅에서 왕위에 오르시니, 사방 2천리 땅에서 이에 호응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떨쳐 일어나 저마다 원한을 갚고자 원수를 들이쳐, 현에서는 현령과 현승(縣丞)을 죽이고 군에서는 군수와 군위(郡尉)를 죽였습니다. (진왕께서는) 옛 초나라 땅을 회복하여 진(陳)에서 왕위에 오르신 뒤에는 오광(吳廣)과 주문(周文)으로 하여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이같은 때에 공을 세워 제후로 봉함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호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깊이 생각하시어 일을 꾀해 보십시오. 천하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진나라를 미워한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지금이 바로 그 힘을 빌어 무도한 임금과 벼슬아치들을 벌하고 부모의 원한을 풀어줄 때입니다. 더하여 그 공으로 나라를 얻고 땅을 차지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사내 대장부가 해볼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 조나라 땅의 많은 호걸들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현령과 군수를 죽이고 무신 아래로 모여드니 그 군사만도 몇 만이 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무신은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높인 뒤에 조나라의 성곽들을 들이쳐 여남은 개나 떨어뜨렸다.

무신군의 군대가 동북쪽으로 범양(范陽)을 치려할 무렵이었다. 범양 사람 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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