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뇌신비]주당들 해마부위 손상돼 기억력 감퇴

  • 입력 2002년 11월 3일 17시 49분


뇌에 병이 생긴다고 반드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측두엽(관자엽) 안쪽의 편도체나 해마 같은 부위에 저장되기 때문에 이런 부위가 손상돼야 기억력 감퇴가 생긴다.

술을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마시면 해마 부위가 심하게 손상 되어 기억력이 떨어지게 된다. 술꾼들은 깜박깜박 할 뿐 아니라 거짓말도 잘 하는데 이것은 이들의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없어진 기억을 보충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 역시 양쪽 해마 부위를 잘 손상시키며 이런 환자는 흔히 기억력 장애를 후유증으로 남긴다. 뇌중풍(뇌졸중)은 흔한 병이지만 해마 편도체 같은 부위에는 잘 안 생긴다. 그러나 ‘시상’의 앞쪽 역시 기억 회로의 일부이며 이곳이 뇌중풍으로 손상되면 순식간에 기억기능을 상실한다. 이보다 더욱 걱정되는 병은 알츠하이머병(노인 치매)인데 초기에는 해마 부위 손상에 따른 기억력 감퇴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치매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반면 51세 남성인 C씨의 경우처럼 ‘좋은 병’도 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등산하고 돌아온 C씨는 갑자기 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금방 등산하고 돌아온 것을 잊어먹어 버린 것이다. 그는 작년부터 군대에 복무 중인 아들을 찾기도 하고, 밥을 잘 차려먹고는 금방 아내에게 ‘이제 밥 같이 먹읍시다’라고 하기도 했다. 놀란 가족들에 의해 병원을 방문한 C씨에게 ‘사람’ ‘병원’ ‘금강산’을 기억하라고 한 후 5분 지나 다시 물어보니 세 단어를 기억하는 것은 커녕 의사가 그런 기억 테스트를 시킨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가족들은 몹시 걱정했지만 다음날 아침 C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한 정상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처럼 한 나절 정도 완전히 기억을 상실하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오는 병을 ‘일과성 전 기억상실증’이라 한다. 이 병은 보호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반드시 저절로 낫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 이 기이한 병의 정체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일종의 편두통이라는 의견, 간질 현상이라는 의견 등이 대립되고 있다.

최근 유럽 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촬영 검사를 이용해 이런 환자들의 측두엽에 있는 기억 담당 부위에 조그마한 병변이 있음을 제시하며 이 병은 일종의 가벼운 뇌졸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떠나 이 병은 거의 재발하지 않는, 안심할 수 있는 병이다.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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