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족]KTF, 수요일은 ‘키즈데이’…오후 5시 강제퇴근

  • 입력 2002년 10월 8일 16시 30분


KTF는 매주 수요일을 ‘키즈 데이’로 정해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오후 5시 강제퇴근을 실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환 이상엽 윤성욱 정윤필 변석주 원유상 주영일 류정순씨.-박영대기자-
KTF는 매주 수요일을 ‘키즈 데이’로 정해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오후 5시 강제퇴근을 실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환 이상엽 윤성욱 정윤필 변석주 원유상 주영일 류정순씨.-박영대기자-

《“직원 가족이 행복해야 기업이 잘 된다” 엄마 아빠가 다니는 직장에서 우리 가족의 화목을 위해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수 여성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유럽이나 북미 선진국의 ‘가족친화정책(Family-friendly employment policies)’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직원들이 직장에서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KTF는 2일부터 수요일을 ‘키즈 데이(kids day)’로 정했다.

특별한 업무가 없는 모든 사원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시간을 지켜야 한다. 위반자를 막기 위해 문 앞에서 팀장, 실장급 이상 임원들이 사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체크 아웃’ 시간을 확인한다.

‘키즈 데이’는 KTF의 신임 이경준 사장(54)이 취임하면서 내세운 ‘열정(Kids)’, ‘신뢰(Trust)’, ‘신바람(Fun)’ 모토 가운데 하나. “어린이처럼 순수한 열정을 가지라”라는 뜻으로 수요일 오전 9시∼ 10시 30분 전화통화를 금지하고 엘리베이터 운행까지 중지하면서 각자가 업무와 아이디어 발굴에 전력하도록 했다. 청바지차림 출근, 회의 금지 등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원칙들도 세워졌다.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KTF사옥에서는 ‘키즈 데이’ 첫 회 시행을 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 대부분은 한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자녀를 둔 엄마 아빠들로 “첫 날이라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평했다.

퇴근 후 자기계발에 집중하라는 ‘오후 5시 이후’에 웬 가족타령?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직장인의 저녁시간은 짧기만 하다. 동료와의 의례적인 저녁식사, 불필요한 회식자리까지 참여하다보면 오후 8∼9시는 훌쩍 넘기기 마련. 여기에 잔업과 야근까지 겹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인 이들의 일상에서 ‘오후 5시 퇴근’이란 가족들로부터 잃은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

가족에게 점수를 따야(齊家) 자기계발도 하고(修身) 회사에 충성해(治國) 사회전체가 좋아진다(平天下)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섯 살짜리 딸 예지랑, 아내, 저, 그리고 뱃속의 아기, 이렇게 넷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갔어요. 보통 외식이라고 하면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올리는데 허름하지만 정겨운 떡볶이 집에서 먹으니 더 단란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YMCA 야구단’ 영화도 봤어요.”(주영일 과장·35·경영분석팀)

“마침 아시아경기 기간이라 초등학생 남매와 텔레비전으로 야구와 축구 경기를 봤지요. 평소에는 밤 10시 이후에나 들어가는 아빠가 집에 있는 게 신기한데다 자기들만큼이나 스포츠에 열광하는 게 재미있는지 꼭 곁에 붙어 있더라고요.”(김기택 차장·38·인사팀)

변석주 과장(35·경영 혁신팀)은 마침 개천절인 3일까지 이어진 연휴기간에 충청도 일주를 감행했다. 아내와 아들 종련이(3)와 함께 금강변에서 식사도 하고 계룡산 국립공원이며 동학사를 구경한 뒤 대천항에서 제철을 맞은 대하도 먹었다.

“종련이가 평소보다 뽀뽀를 훨씬 많이 해 주더라고요. 매일 엄마하고만 놀다가 아빠랑 함께 있으니까 좋았다는 뜻이겠죠.”

물론 의욕만 앞세우다 만 ‘시행착오’ 케이스도 있었다.

“처가에 세 살배기 딸을 맡겨 두고 주말에만 보러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곁을 잠시도 떠나려 하지 않고 심지어 저더러 어르신들 말투로 ‘김서방 왔는가?’ 라고 물으며 낯설어 해요. 그날 만큼은 아이를 데리고 와 재미있게 놀아주려고 했는데 밀린 잠이 쏟아져 아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아침까지 자고 말았네요.” (김영걸 과장·30·경영혁신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이 과외며 학원 때문에 저보다 늦게 ‘퇴근’ 하는 날도 있어요.

오랜만에 남편이랑 영화 한 편 보자고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데 차가 막혀 서로를 원망하다 저녁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네요. 다음부터는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을 차려주는 것으로 ‘목표 수정’ 하려고요.(류정순 차장·38·TCS팀).”

이들은 “가족과 함께 야구장을 찾겠다” “아이들을 야간 개장하는 놀이동산에 데려가겠다” “2시간 동안 동화책을 읽어주겠다”며 더 멋진 수요일을 기약했다.

“오후 5시 이후의 삶이 이렇게 풍요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남편이 저보다 일찍 퇴근합니다. 제가 일찍 퇴근하는 수요일을 아예 ‘패밀리 데이’로 정하고 오후 6시부터는 함께 운동이나 나들이를 하기로 했어요.”(이선주 과장·34·언론홍보팀)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전문가 의견…가족친화정책 기업경쟁력 높인다▼

16∼64세 여성 중 66%가 일을 하고 있고 수도 런던의 의회 의원 중 44%가 여성이며, 5세 미만의 아이를 둔 여성의 취업률이 54%에 이르는 곳, 바로 이 나라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해 서유럽에서 후진국으로 꼽히는 영국 여성의 현주소이다.

영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여성이 가장 차별받는 유럽국가 중의 하나라는 불명예를 벗어 던지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

직장에서의 보수 균등화, 공직 여성 취업 목표제, 여성 차별금지 및 성폭력 방지를 위한 조직을 가동하고 육아 책임의 사회적 분담을 추진한다.

현재 여성의 취업 구조는 아직도 전형적인 M자 구조를 보여, 전체 여성 취업률 66%에 대해서 5세 미만 아동을 둔 여성의 취업률이 54%, 5세에서 10세사이의 자녀를 둔 여성은 70%, 그리고 10세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은 77%로 올라간다.

육아로 인해 여성이 일시적으로 사회에서 퇴장하면 이는 보수 불균등, 고용 불안정, 학습기회의 상실 등 직장에서의 여성 차별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 여성 취업자의 임금 평균이 남성의 82%에 불과하고, 남성 파트타이머의 비율이 남성 전체 취업의 8%인데 반해 여성의 경우 여성 전체 취업의 44%에 해당한다.

이에따라 선진국에서는 앞다퉈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한 가족친화적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직장과 가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여성들만 이 정책으로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직장의 일과 가정의 일을 병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또 자녀들에게도 성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주는 장기결근을 막고 채용비용을 낮춰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감소는 범죄나 관계의 단절 등 사회의 병폐를 감소시키기까지 한다.

물론 국가 경제의 장기적 성장 제고라는 목표와도 무관하지 않다. 노동의 이동이 점차 자유화되고 있는 세계화된 현재, 선진국에서 미숙련노동과 숙련 노동의 임금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선진국의 미숙련 노동이 후진국의 미숙련 노동과 직접 맞닥뜨리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데 반해 고숙련 노동의 공급은 수요에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고 선진 국가의 장기적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숙련 노동의 보고인 여성 노동의 적극적인 참여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상대적 고실업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얼핏 보면 이율배반적인 정부 정책이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선진국 진입을 위해 애쓰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국가와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유럽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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