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유족들 고통과 상심의 11년 세월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43분


“잊을 만하면 터지고…. 차라리 잘된 기라예.”

27일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현장을 찾은 뒤 돌아서는 유족들의 눈가에는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이제는 살아 돌아올 수 없구나’ 하는 체념의 눈빛도 역력했다.

유족들에게 지난 11년은 길고 긴 고통과 가슴 조임의 나날이었다. 생업도 포기한 채 아이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은 물론 상심을 술로 달래기도 했다.

유족들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문도 잠그지 않고 살아왔는가 하면 거짓 신고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철원(禹哲元)군의 아버지 우종우씨(53·자영업)는 그동안 분신처럼 보관해왔던 노랗게 빛이 바랜 전단지와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공중전화카드 10여장을 품속에서 꺼내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둘째(철원)를 잃고 몇 년간은 일도 못했지예. 견디다 못해 애를 하나 더 낳으려고 했지만 그놈이 눈에 아른거려서….”

우씨는 98년 여러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했지만 끝내 와룡산 기슭을 떠나지 못했다.

“이 지역이 개발되는 바람에 유족들도 이사가야 할 상황인 기라. 그러나 멀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있나. 있어도 여기 안 있겠나 싶어서….”

김종식(金種植)군의 아버지 김철규(金鐵圭)씨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술로 달래다 지난해 10월 꿈에 그리던 아들 곁으로 갔다.

부인 허도선(許道先·44)씨는 “술 담배를 전혀 못하던 남편이 상심을 이기지 못해 술로 슬픔을 견디곤 했다”며 “지난해 1월 간경화 판정을 받은 뒤 결국 9개월 만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허씨는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열흘에 한번꼴로 300여만원씩 드는 남편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과 땅을 팔아 지금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술로 상심을 달래며 살아가던 한 아버지는 주변과의 잦은 마찰로 19일 경찰에 붙잡혀 현재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숱한 허위 신고도 유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96년 아이들 시신이 동네 재래식 공중화장실 밑에 빠져 있다는 제보로 밑바닥을 온통 파헤쳤는가 하면 거액을 요구하는 괴전화도 잇따랐다.

김종식군의 삼촌 김재규(金在圭·42)씨는 “제보 신고가 잇따를 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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